최근에는 정식의 법규범과 대치되는 의미의 비법적 규범, 즉 소프트로(soft law: 연성규범)의 역할이 널리 확대되고 있다. 소프트로는 이미 우리 기업법제에도 상당히 침투한 상태이다. 그 대표적인 예는 1999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제정된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이다. 지배구조 모범 규준(이하 “코드”)은 이미 거의 100개국에서 채택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은 영국의 코드(UK Corporate Governance Code)이다. 이제까지 코드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최근 영국에서는 그 폐지론이 발표되어 관심을 끈다. Brian R. Cheffins & Bobby V. Reddy, Thirty Years and Done – Time to Abolish the UK Corporate Governance Code (2022). 저자들은 지난 주(6.18.)에 소개한 바 있는 Cambridge대 교수들이다. 저자들은 영국의 코드는 처음에는 경영자의 책임경영을 촉진하는 장점이 있었지만 이제는 편익보다 비용이 커졌다는 이유로 폐지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7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먼저 2장에서는 코드의 제정연혁과 개요, 그리고 주관기관인 재무보고위원회(Financial Reporting Council: FRC)를 소개한다. 3장에서는 코드를 도입한 이유에 대해서 논한다. 저자들은 1991년 코드의 토대를 이룬 준비작업을 위해 조직된 Cadbury위원회는 대리비용을 감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그 수단으로 이사회의 경영감독을 강화하고 주주와 이사회 사이의 소통을 촉진하려고 시도했다. 코드는 지배구조를 완전히 시장에 맡기지는 않으면서도 “comply or explain”을 요구함으로써 각 회사의 여건에 따라 상이한 지배구조를 채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회사들은 대체로 코드를 준수하는 쪽을 택했다.
4장에서는 이렇게 제정된 코드가 상장회사에 도움이 되었는지 여부에 대해서 논한다. 저자들은 83페이지에 달하는 코드가 기업공개를 위축시킴으로써 런던시장에서 상장회사 수의 감소를 초래한 하나의 요인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코드를 뒷받침하는 것은 좋은 지배구조는 좋은 실적을 가져온다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런 믿음은 폭넓게 존재하지만 저자들은 실제 데이터는 그런 믿음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사외이사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는 코드의 태도가 경영자의 과감한 변화를 저해한다는 지적을 소개한다. 5장에서는 코드가 런던시장의 위축을 가져온 주된 원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저자들은 코드가 이제 더 이상 효용을 갖지 못하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상장회사들은 코드가 없더라도 코드의 주요내용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구태여 코드를 유지할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코드가 이미 회사의 실무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2000년 현재 대규모 상장회사에서는 사외이사가 이사회 과반수를 차지한 것 등 여러 예를 든다. 또한 현재 코드 주관기관인 FRC은 초기에 코드 제정에 관여한 사람들에 비해서 기업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코드가 기업현실과 괴리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한다. 이처럼 코드의 실익이 별로 없고 기업현실과 괴리될 우려가 있다고 해도 그 비용이 크지 않으면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6장에서 공시와 준수에 드는 비용이 코드의 편익을 초과하므로 코드를 폐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7장에서는 코드의 “comply or explain”방식은 그 실효성이 주주의 행동에 달려있는데 그런 체제는 최근 강조되고 있는 이해관계자이익을 반영하는데 적합지 않다는 점을 폐지론의 또 하나의 근거로 든다. 끝으로 8장에서는 코드를 폐지한다고 해서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를 전면적으로 철폐하자는 것은 아니고 코드의 상당 부분을 상장규칙에 따른 공시규제의 형태로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