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terbrook과 Fischel의 업적에 대한 Bebchuk의 글

1년 전 Bebchuk교수의 방대한 학문적 업적을 조망하는 글을 소개한 바 있다.(2021.10.27.자) 오늘은 그의 업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파악할 수 있는 글을 소개하기로 한다. Lucian A. Bebchuk, Competing Views on the Economic Structure of Corporate Law (2022). 이 글은 Easterbrook과 Fischel(“E&F”)의 명저, The Economic Structure of Corporate Law의 출간 3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것으로 E&F와 자신의 견해와의 차이점을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E&F의 책과의 관련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전에 소개한 글과는 달리 Bebchuk의 모든 업적을 커버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주요업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나오게 된 것인지에 관해서 저자 자신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회사법분야 법경제학연구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E&F와 Bebchuk의 학문적 성과를 요약정리하고 있어 지난 40년간 학계의 관심을 끌었던 논의의 골자를 파악하기에 편리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글은 다음 다섯 가지 테마에 관해서 자신과 E&F견해의 차이점 및 공통점을 제시한다: ①기업인수; ②회사법과 사적자치; ③州회사법 사이의 경쟁; ④효율과 분배; ⑤회사의 목적. 구체적인 내용에 관한 설명은 생략한다. 저자는 자신과 E&F의 견해 사이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면서도 양자 사이의 공통분모가 상당히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 사이의 공통분모가 크다는 것은 미국학계에서 법경제학적 사고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평소 E&F의 견해는 재미있지만 조금 극단적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E&F보다는 Bebchuk의 견해에 훨씬 더 끌리는데 아마 적어도 미국의 바깥에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마찬가지가 아닐까 짐작된다. 다만 사고를 자극하는 데는 극단적인 견해가 유용하다는 점에서 E&F의 업적은 학문적 가치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20여 년 전 Easterbrook을 워크샵에서 만나 담소를 나눈 일이 있다. 당시 틀린 결론에 이르더라도 재미있는 시각을 제시하는 논문을 좋아한다는 내 말에 그도 동의한다며 웃던 기억이 떠오른다.

Bebchuk의 글에서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①에서 자신이 회사법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밝히는 부분이었다. 사실 그가 회사법을 전공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오래 동안 궁금하던 차였다. 내가 그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40여 년 전인 Harvard 유학시절의 일이다. 당시 법경제학을 가르쳐준 Shavell교수에게 법경제학을 좀 더 공부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니 Bebchuk이란 학생이 Michaelman교수의 지도로 물권법을 법경제학적 관점에서 공부하고 있다며 한번 만나볼 것을 권했다. 나보다 1년 앞서 Harvard생활을 시작했던 그에게 유학생활의 자문을 구할 겸 연락을 해서 만났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별로 기억이 없고 단지 나보다 더 두꺼운 안경을 쓰고 완전히 공부에만 몰입해있는 학생이란 인상만이 남아있다. 나는 회사법에 관한 LLM논문을 쓰던 중이었지만 그의 관심분야는 전혀 달랐기에 공통의 화제도 없어 만남은 아주 금방 끝났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Harvard Law Review에 공개매수에 관한 그의 논문이 발표된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소개한 글을 읽으니 내 오랜 의문이 풀렸다. 그에 따르면 1981년 Brudney교수가 건네준 E&F의 논문을 읽고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였는데 Brudney교수가 그것을 한번 글로 써보라고 해서 쓴 것이 Harvard Law Review에까지 실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논문이 계기가 되어 E&F와의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점점 회사법에 관심이 쏠리게 되었으며 학문적 명성까지 얻게 되어 마침내 Harvard Law School 교수가 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런 내막은 처음 알게 된 것이라 그 자체로 흥미진진했는데 특히 관심을 끈 것은 Bebchuk의 천재성 보다 Brudney교수의 역할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Bebchuk은 적어도 회사법분야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Brudney는 내 지도교수였던 Robert Clark교수의 멘토로 그가 Harvard에 자리잡는 데 기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Clark교수를 1970년대 후반 영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Harvard의 회사법 교수진은 별로 강하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Bebchuk이 가세한 후부터 회사법 교수진은 도약을 시작하여 현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어쩌면 2016년 타계한 Brudney교수는 학문적 저술 보다 이들 두 명의 스타교수들을 회사법학계로 이끈 것이 더 큰 업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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