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충돌거래에서의 절차와 내용의 공정성

이사의 자기거래에 관해서 우리 상법은 “거래의 내용과 절차”의 공정성을 요구하고 있다(§398). 이는 미국 델라웨어 판례법상의 전체적 공정성(entire fairness)요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전체적 공정성요건은 내용의 공정성과 아울러 절차의 공정성도 요구한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 바 있다. “이처럼 절차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결국 거래내용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델라웨어주 형평법원은 유명한 Trados판결에서 이사가 이해관계가 있고 독립성이 없고 매매과정이 불공정하였더라도 매매가격이 공정하다면 완전한 공정기준을 충족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각주생략)(김건식, 기업집단과 관계자거래, 상사법연구 35권3호(2016.8)(회사법연구III(2021) 165면)). 이 부분을 쓰면서 “매매가격이 공정하기만 하면 절차가 불공정하더라도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면 절차의 공정은 결국 무시될 공산이 큰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떠나지 않았다. 오늘은 마침 Bainbridge교수의 블로그에서 그에 관한 포스트가 업로드되었기에 소개한다. Calculating Damages Where the Breach of Fiduciary Duty Involves a Flawed Process: What Happens if There is Unfair Dealing but the Price is Fair(2022.7.18.자).

Bainbridge교수는 매매가격이 공정하다면 매매과정이 불공정하더라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글을 시작한다. 그는 법원이 손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완전한 공정성 기준은 두 가지 측면이 있지만 하나의 기준이므로 절차가 불공정한 경우에는 가격의 불공정성을 시사한다는 델라웨어주 대법원의 판시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델라웨어 판례상 공정한 가격은 특정한 점(point)가 아니라 특정한 가격대(range of prices)를 가리킨다(HMG/Courtland Properties, Inc. v. Gray, 749 A.2d 94, 116–17 (Del. Ch. 1999); Norton v. K-Sea Transp. Partners L.P., 67 A.3d 354, 367 (Del. 2013)). 그리하여 이익충돌거래에서 결정된 가격이 공정성의 범위에 속하는 경우에도 만약 공정한 절차를 따랐다면 그 거래가격이 공정성의 범위 내에서 상하로 변동될 수 있다. Bainbridge교수는 법관이 절차가 불공정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공정성의 범위 내에 있는 거래가격과 법관이 재량에 따라 파악한 진정한 가치와의 차액을 손해배상액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델라웨어주 법원도 인정하는 바와 같이 그러한 차액을 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미국에서도 많지는 않지만 대체로 위에 소개한 Bainbridge교수의 견해가 다수설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처럼 절차의 불공정성이 가격의 불공정성을 시사한다는 견해는 특히 기업집단내의 이익충돌거래가 널리 행해지는 우리 경제계에서는 매우 부담스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견해가 우리나라에서도 당장 채택될 것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 판례도 결국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전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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