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 채권자에 대한 모회사의 책임이란 주제는 이젠 약간 따분할 정도로 친숙한 테마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이 오래된 문제에 대해서 영국 회사법학계의 원로인 Davies교수가 최근 발표한 논문을 소개한다. Paul Davies, Corporate Groups in the UK: Separate Legal Personality, Limited Liability and the Law of Tort (2026). Davies교수에 대한 소개는 2020.3.24.자 포스트 참조.
논문은 모회사와 자회사가 존재하는 기업집단에서 법인격독립(separate legal personality)을 엄격하게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피해자 보호를 위해 기업집단 전체의 책임을 물을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저자는 법인격독립에 관한 리딩케이스인 1990년 Adams v Cape Industries plc 판결을 출발점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Adams판결의 사안은 매우 복잡하지만 단순화하자면 영국 회사인 Cape Industries plc가 남아프리카에서 채굴한 석면을 미국에서 판매하면서 석면으로 인한 손해에 대한 배상청구를 피하기 위해서 미국의 완전자회사를 통하여 판매한 경우에 관한 것이다. 영국의 항소법원은 기업집단 전체를 하나의 회사로 취급하는 일반원칙은 존재하지 않고 자회사도 독립적인 법인격을 갖는다고 판시하였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다음 3가지로 정리했다. ①법인격독립과 유한책임원칙에 관해서 저자는 평상시에 주주를 회사채권자의 청구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은 법인격독립으로 충분하고 유한책임원칙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유한책임원칙이 동원되는 것은 도산 시로 주주가 회사로부터 추가출자에 대한 요구를 받는 때라는 것이다. 회사채권자에 의한 청구가 문제된 Adams판결에서 유한책임이 정식으로 논의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본다.
②저자는 Adams판결에서 법인격독립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다양한 주장을 배척한 것에 주목한다. 저자는 Adams판결의 이러한 태도가 법적 명확성은 있지만 사안이 기업집단에 관한 것이고 원고가 불법행위의 피해자라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③저자는 그 후 영국의 불법행위법이 이 문제를 법인격부인이 아니라 자회사의 행위에 의하여 피해를 입은 자들에 대해서 모회사의 직접적인 주의의무(duty of care)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한 논문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1장은 위 ①과 관련하여 법인격독립의 법리와 그 사회적기능을 살펴본다. 유한책임원칙의 역사적 발전과정과 도산법과의 접점, 법인격의 재산분리기능이 갖는 효용, 유한책임원칙에 따른 위험을 부담하는 회사채권자의 자구책 등을 차례로 검토한다.
2장에서는 독립적 법인격에 관한 리딩케이스인 1990년 Adams v Cape Industries plc 판결을 검토하고(위 ②), 3장에서는 모회사의 주의의무를 근거로 모회사의 책임을 인정한 근래의 판결들을 소개한다(위 ③). 4장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법원이 택할 수 있는 보다 나은 대안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한다. ①법인격부인법리의 재생, ②자회사가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한 모회사의 대위적 책임, ③모회사 불법행위의 한계를 넘어선 모회사의 주의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