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상법은 이른바 관계자거래의 경우 이사회의 사전승인을 요한다(398조). 다수설은 사후승인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지만 내가 공저자로 참여한 회사법책에서는 사후승인도 허용된다는 태도를 밝히고 있다(회사법 10판 484면). 이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찾기 어렵지만 최근 그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담은 논문이 발표되었기에 소개하기로 한다. Roy Shapira, The End of the Beginning in Corporate Law (2026). 저자는 이미 블로그에서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는 이스라엘 학자이다. 작년 런던의 학술대회에서 마침 가까운 자리에 앉았기에 휴대폰을 꺼내 내 블로그에서 자신의 논문을 여러 번 소개했음을 알려주니 약간 부끄러워하면서도 너무 좋아해서 나도 흐뭇했다. 자신의 논문이 먼 나라에서도 알려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모양이다.
논문은 좀 거창한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미 많이 언급한 바 있는 지배주주거래에 관한 델라웨어 회사법개정(SB 21)을 다루고 있다. 이제까지 논의는 주로 지배주주거래에 대한 정화(공정성담보)절차의 완화와 지배주주의 범위에 집중되었음에 반하여 논문에서는 SB 21이 정화절차의 사전실시요건(ab initio requirement)을 빼버린 것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3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장에서는 SB 21이 통과되기 전 델라웨어법원이 지배주주거래에서 사전실시요건을 채택한 경위와 SB 21에서 그것이 누락된 사실을 지적한다. 저자는 사전실시요건의 출현을 회사법이 실질에서 절차로 중점이 이동한 현상의 일환으로 파악한다. II장에서는 사전실시요건의 배제가 정책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밝힌다. 저자는 정화절차가 실시되는 시기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회사와 지배주주 사이에 이미 교섭이 진행된 단계에서는 정화절차는 실질적인 견제가 아니라 겉치레의 절차가 될 위험이 크다고 본다. 저자는 사전실시요건 배제의 정당화에 동원될 수 있는 논리 세 가지를 차례로 논박한다. III장에서는 SB 21하에서 법원이 투자자보호를 위하여 취할 수 있는 방안과 아울러 회사법의 작동에 관한 몇 가지 거시적 교훈을 제시한다. 먼저 법원의 조치와 관련하여 저자는 SB 21에는 사전실시요건이 없지만 법원은 정화절차가 실시된 시기를 신인의무의 관점에서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어서 저자는 정화절차와 관련하여 기업법전문법원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