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블록체인이나 가상자산의 법적 논점에 관한 연구는 이미 상당히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나도 연구를 선도하지는 못할망정 완전히 소외되는 것은 피하자는 심정으로 간혹 문헌을 뒤적이고 있다. 마침 DAO를 회사법의 관점에서 분석한 논문을 발견했기에 소개한다. Michael Schillig, DAOs and the History of Corporate Law (2025). 저자는 독일출신으로 King’s College London에서 회사법, 계약법, 도산법 등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로 가상자산분야에 논문이 많다.
DAO에 대해서는 이미 국내에도 연구가 축적되고 있는 중이다. 2022년 노혁준 교수와 안수현 교수가 각각 이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고(“블록체인과 회사법”, 상사법연구 제41권 제3호 83면; “탈중앙화금융의 기업-금융규제법제연구” 규제혁신법제연구 22-21-②-1) 2024년에는 서울대에서 DAO만을 다룬 박사학위논문까지 출간된 바 있다(남궁주현, “탈중앙화 자율조직(DAO)에 관한 법적 연구”). 훌륭한 국내의 선행연구가 버젓이 존재하는 마당에 굳이 이 논문을 소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논문은 19페이지로 위의 문헌들에 비하여 훨씬 짧을 뿐 아니라 DAO를 회사법과의 일종의 비교법적 시각에서 분석함으로써 DAO의 특징이 보다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Law Commission은 DAO를 “기술에 기반한 참가자들의 사회적 구조 내지 조직”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여기서 기술이란 블록체인기술과 그에 기반한 스마트계약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DAO가 복수의 참가자들이 공동의 이익이나 목적을 추구하는 “조직”(organization)이라는 점에서는 회사나 조합과 차이가 없으나 “탈중앙화”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한 조직형태와 구별된다. 논문은 DAO에서 발생하는 법적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회사법의 역사에 비춰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두 개의 부분으로 구성된다. 전반부에서는 DAO와 회사를 기능면에서 비교한 후 후반부에서는 회사법의 역사로부터 얻을 수 있는 DAO에 관한 교훈을 제시한다. 전반부에서 저자에 따르면 DAO와 회사는 모두 “자원의 수평적 결합”(horizontal pooling of resources)을 수반한다. 양자는 모두 내부적 가버넌스의 구조와 외부적 책임의 구조를 갖춰야 한다. 내부적 구조는 출자, 이익배분, 재산에 대한 지배, 의사결정 등의 면에서 참가자 사이의 관계를 정하는 반면에 외부적 구조는 조직의 재산과 조직의 외부자사이의 관계를 규정한다. 회사법은 이러한 문제를 ①회사의 법인격, ②주주의 유한책임, ③투자자 이익을 표창하는 재산권으로서의 주식, ④신인의무의 구속을 받는 중앙집권적 경영을 통해서 해결한다. 이러한 요소들의 기능은 계약만으로는 생성해낼 수 없으므로 결국 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었다. 저자는 DAO의 경우에 위와 유사한 기능을 블록체인이나 스마트계약과 같은 기술에 의존하는 것만으로 생성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하여 논문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DAO의 구조상 어느 범위에서 법의 도움이 필요한가를 회사법의 역사를 토대로 논한다. 저자는 로마시대로부터 시작하여 회사법의 역사를 간단히 정리하면서 DAO의 법적 논점을 검토한다. 저자에 따르면 1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대규모 해외사업은 법인격있는 주식회사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고 유한책임원칙이 정착되었으나 국왕의 특허를 얻는 것이 번거로워서 실제로는 법인격없는 주식회사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법인격없는 주식회사의 경우 주주의 유한책임이 부정될 여지가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주주의 책임을 묻기는 여러웠다고 한다. 저자는 DAO의 경우 개발자와 가버넌스 토큰 보유자사이에 조합관계가 성립한다고 볼 여지가 없지 않지만 이들은 변동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조합관계를 증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또한 18세기초에는 주식회사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South Sea Bubble로 대표되는 주식투기사태가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잠시 주식양도를 억제하는 Bubble Act가 제정되기도 했으나 결국 그 법률은 사회의 수요를 이기지 못하고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가상자산도 투기대상이 될 위험이 있으므로 각국은 ICO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지만 저자는 정당한 상업적 수요가 있으면 결국 그런 규제는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어서 저자는 19세기 중반 회사의 법인격과 유한책임원칙이 정착된 과정을 설명한다. 흥미로운 것은 법인격과 유한책임원칙이 영국의 산업혁명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아니었다는 저자의 지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유한책임원칙은 철도회사와 같이 수동적인 소액투자자들의 자금까지 동원해야할 정도로 대규모자금을 요하는 기업의 경우에만 요구되는 것이었음에도 모든 주식회사에 타당하는 원칙으로 채택됨으로써 경제개발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과연 DAO의 경우에도 법인격과 유한책임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DAO관련기술이 아직 발전중이라는 이유로 판단을 유보한다.
끝으로 저자는 개발자와 같은 참여자에게 신인의무를 적용할 것인지 여부의 문제를 검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