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상 부실공시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의 효과

자본시장법상 공시규제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장치로서 손해배상책임이 지닌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국내외 학계에서 논의가 분분한 상황이다. 논의가 정리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실증적 데이터의 부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이 문제에 관한 실증연구의 공백을 보완해주는 최신 연구를 소개한다. Fernán Restrepo, The capital-market effects of introducing private rights of action in securities regulation: Evidence from the United Kingdom, Journal of Law & Economics 66(1). 저자는 콜롬비아 출신의 소장학자로 미국과 영국의 유명 대학에서 수많은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UCLA 로스쿨에서 회사법과 증권법을 가르치고 있다.

저자가 실증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유통시장에서의 부실공시에 대해서도 회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2006년 영국의 금융서비스 및 시장법(FSMA) 개정(과 그 후 적용범위를 확대하한 일련의 개정)이다. 그 이전에는 부실공시에 대한 회사의 책임은 발행시장 공시의 경우에만 인정되었던 것을 유통시장 공시에까지 확대한 것이다(§90A). 저자의 실증연구에 따르면 사적소권의 확대는 유동성과 시가총액을 높임으로써 자본시장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효과는 부실공시로 인하여 손해를 본 투자자가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거나 혹은 손해배상책임의 위험이 사전적으로 부실공시를 억제하는 작용을 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양자 모두가 작용하였기 때문일 수 있지만 저자는 그 효과가 정확히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발현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저자의 논문은 통상의 실증연구와 마찬가지로 제도적 배경(2장), 가설(3장), 기존 연구(4장), 연구방법(5장), 결과(6장), 결과의 분석(7장)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옛 틀을 벗어나지 못한 법학자로서 눈길이 가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제도적 배경을 다룬 2장이다. 저자는 영국의 부실공시에 관한 집단소송제도가 미국과 다른 점으로 다음 3가지를 든다. ①미국은 이른바 opt-out제도를 취하고 있는데 반하여 영국은 opt-in제도를 취하고 있다. ②양국 모두 부실공시에 대한 신뢰(reliance)를 요구하지만 그것을 요구하는 엄격성의 정도에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시장에 대한 사기이론(Fraud on the Market Theory)에 의하여 신뢰를 추정하고 있다. 그에 비하여 영국의 FSMA는 적어도 투자자가 부실공시를 신뢰한 것이 합리적인(reasonable) 상황에서 증권을 거래하였을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보다 엄격하다. ③양국의 변호사보수는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가장 큰 차이는 영국에서는 성공보수에 대한 의존도가 미국에 비해 훨씬 낮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 영국에서는 집단소송이 미국에서보다 훨씬 드물다.

저자는 사적소권의 확대가 자본시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영국의 개혁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나아가 저자는 자신의 연구결과가 집단소송의 남용을 이유로 그것을 제한하려는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는 미국의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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