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상법개정이 마치 급물살을 탄 것처럼 진행되고 있다.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규모와 속도의 회사법개정은 미국 회사법을 대표하는 델라웨어주에서도 감행된 바 있다. 오늘은 델라웨어주의 최근 회사입법을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Marcel Kahan & Edward B. Rock, The New Political Economy of Delaware Corporate Lawmaking (2025). 저자들은 미국 회사법학계의 대표적 학자들로 모두 NYU에 재직중이다. 그 전에는 물론이고 10년 전 NYU에서 한 학기를 보낼 때에도 수 차례 마주치고 식사도 같이 했지만 전공 이외의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없다.
델라웨어 회사법의 중심은 법원이 형성한 판례법이고 제정법은 부수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리고 제정법인 델라웨어 일반회사법(Delaware General Corporation Law)의 개정은 실질적으로 Council of the Corporate Law Section이란 델라웨어 변호사협회의 한 부서가 담당한다. Council은 주로 델라웨어의 로펌 변호사들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법개정 작업 시에 델라웨어 회사와 델라웨어주의 장기적 이익을 주로 고려해왔다. 최근 이러한 기존의 관행에 큰 변화가 발생하여 법원의 판결을 뒤엎는 내용의 법개정이 두 차례 일어나게 되었다(이에 관해서는 KBLN 2025.5.3.자; 2025.6.3.자). 논문은 그러한 법개정의 동인이 된 변화를 검토하고 델라웨어주가 기존의 우위를 지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논문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장에서는 델라웨어 회사법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와 아울러 전통적인 법개정방식이 무너지게 된 과정을 살펴본다. II장에서는 델라웨어주법의 우위에 대한 위협에 대해서 조망한다. III장은 이러한 법개정의 동인이 된 자본시장과 법률시장의 변화에 대해서 상세히 검토한다. IV장에서는 델라웨어주 회사법이 그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새로운 회사법위원회(Corporation Law Commission)을 창설할 것을 주장한다.
특히 내 관심을 끈 것은 III장이다. 저자들이 가장 중요한 자본시장의 변화로 제시한 것은 차등의결권주식의 확산이다. 1980년대에는 IPO에서 차등의결권을 채택하는 회사의 비율이 6%에 미달하였는데 2020년에서 2024년에 이르러서는 약 27%에 달하였고 2025년에는 S&P500 회사 중 36사가 차등의결권주식을 발행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들은 차등의결권주식의 확산으로 인하여 지배주주들의 영향력이 커졌고 로펌들이 지배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고 지적한다. 이와 연결되는 것이 바로 법률시장의 변화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과거 델라웨어주 회사법의 개정은 현지의 로펌 변호사들이 주도하였으나 이들은 자신의 고객회사로부터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유지하며 입법에 관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델라웨어주 법률시장에서는 로펌 수의 증가, 로펌 내 변호사 수의 증가, 외부 로펌의 지사무소 설립증가, 변호사개인의 단기이익추구경향 등의 결과로 입법에 관여하는 변호사들이 지배주주들의 영향력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감소하였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우리 상법의 최근 개정이 주로 지배주주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내걸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델라웨어주 회사법 개정은 주로 지배주주들의 수요를 충족하고 불안을 감소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III장에서 지배주주의 행태와 관련된 서술은 우리 관점에서도 시사하는 대목이 많은데 그중 특히 인상 깊은 한 단락을 인용한다.
“그들[지배주주들]은 사적이익으로부터 큰 이익을 누릴 수 있으므로 차등의결권주식을 가진 지배주주는 그것이 회사전체의 이익에는 반하는 경우라도 관계자거래를 감행할 강한 금전적 인센티브가 있다. 그들은 또한 경영권의 사적이익을 얻을 능력을 억제하는 법적 장치의 힘을 약화시킬 강한 인센티브가 있다. 그런 장치 중 하나가 바로 독립이사의 승인이다. 지배주주 있는 회사도 독립이사들이 있지만 이들은 지배주주의 입맛에 따라 선임된다. 지배주주는 이들 독립이사가 거래소규정이나 회사법상 독립성을 갖추도록 할 인센티브가 있지만 지배주주는 또한 명목상으로는 독립적이지만 지배주주가 원하는 바를 막으려 하지 않을 인물들을 선임할 인센티브가 있다. 끝으로 지배주주는 ”독립이사“의 정의를 행동을 고려하는 실질적 기준에서 거래소 규정에서와 같이 예측가능한 결과를 낳는 형식적 기준에 따라 변경할 인센티브가 있다. 1980년대에 학자들은 이사회를 자기 편으로 채울 수 있는 CEO의 파워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이러한 면에서의 지배주주의 파워는 지배주주가 아닌 CEO의 파워를 크게 능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