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의 부패는 특혜와 금전이 1대1로 교환되는 노골적인 부패보다는 대가관계가 흐릿하여 형사처벌을 비롯한 제재가 어려운 “소프트(soft) 부패”가 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왔다. 마침 그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은 최신 논문을 발견하였기에 소개한다. Reilly Steel, Systematic Corruption, Forthcoming Columbia Law Review (2026). 저자는 정치학박사학위도 받은 젊은 부교수로 콜롬비아 로스쿨에서 회사법을 가르치고 있다.
저자는 미국 정치경제 생태계가 시스템 차원의 부패에 의하여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저자가 말하는 시스템 부패란 정치인이 자신의 후원자들에게 경제적 특혜를 제공하고 정치인은 다시 후원자들의 지지를 받음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러한 시스템 부패는 역사적으로 늘 존재했지만 저자는 그 현상이 오늘날 특히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 이유로 과거에는 시스템 부패가 카운티, 주, 연방 등의 단위로 나뉘어 행해졌으나 현재는 연방정부로 권한이 집중되고 있어 부패의 위험이 더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3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먼저 I장에서는 시스템 부패가 나타나는 세 가지 상황, 즉 18세기 영국, 미국의 건국초기, 현재의 미국의 상황을 살펴본 후 미국의 현재 정치경제상황에서 시스템 부패의 위험이 특히 심각한 이유를 설명한다. II장에서는 과거 19세기에 미국이 시스템 부패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정리한다. 저자가 구체적인 대상으로 삼은 상황은 다음 4가지이다. ①회사설립과 관련하여 특허주의를 포기하고 일반설립법을 채택하는 과정, ②공무원 임명과 관련된 개혁, ③정부계약과 관련된 경쟁입찰제도채택, ④정부채무부담에 대한 규제. 저자는 과거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다음 3가지로 정리한다. ①정치인의 재량에 대한 통제, ②자원배분에 관한 의사결정에 대한 당파적 영향의 배제, ③의사결정을 견제하는 장치의 마련. III장에서는 현재의 정치상황에서 시스템 부패를 개선하는 작업에 이 3가지 교훈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검토한다. 저자는 대상을 다음 4가지 분야로 나누어 검토한다. ①회사법, ②독점규제법, ③행정법, ④정치헌금을 비롯한 정치과정에 관한 법률. III장에서 ①회사법에 관한 부분이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 관련해서 저자는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이 제안한 바 있는 법안(Accountable Capitalism Act)과 같이 연방정부에 회사설립에 간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려는 시도나 회사법을 연방법으로 만
들려는 시도는 시스템 부패를 촉진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흥미로운 것은 회사의 의사결정에 대한 정치적 간섭을 견제하기 위하여 종업원의 힘을 빌리는 방안(예컨대 독일의 공동결정제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점이다. 또한 저자는 소유구조가 집중될수록 정치적 영향에 취약하다는 전제하에 소유구조의 집중을 제한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나는 평소 우리나라에서는 그나마 지배주주가 정치적 영향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왔던 터라 이 대목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지 않다.
이 논문을 읽고난 소감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한편으로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많다는 점에서 반가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 답답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