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법상 회사의 정관

회사법을 오래 공부하고 가르쳤지만 정관에 대해서는 별로 깊게 생각해 본 일이 없다. 노혁준, 천경훈 교수와 함께 내고 있는 회사법 책에서도 지난 주에 나온 제10판은 본문이 1044면에 달하는데 정관에 관한 부분은 정관의 변경에 관한 부분까지 포함해도 10면에 미달한다. 미국에서도 정관은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근래 스타트업 투자와 관련된 사적자치가 주목을 받음에 따라 전보다는 논의되는 빈도가 늘고 있다. 오늘은 짧지만 정관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을 남고 있는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Abraham Cable, Why Charters?, 103 Washington University Law Review Online 32 (2025). 저자는 UC San Francisco(종전의 Hastings) 로스쿨 교수이다.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5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먼저 I장은 정관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본다. II장은 정관의 기재사항을 분석한다. 저자는 정관의 기재사항에 관심을 가질 주체로 ①주정부, ②채권자, ③현재와 장래의 주주를 상정하고 각 주체가 관심을 가질 사항을 기재사항으로 정하였다고 본다. ②와 관련해서는 과거 절대적 기재사항이었던 회사가 부담할 수 있는 채무의 한도, 회사채무의 상환에 제공될 주주 개인재산의 한도, 법정자본금에 관한 사항이 사라진 과정이 흥미롭다. 저자는 결국 정관은 ③의 주주를 위한 문서라고 보고 회사의 성장과정에 따른 정관의 변화를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회사의 설립 시에는 정관은 수권주식수, 임원의 책임면제 등 주주소송에 대비한 일부 규정을 담고 있을 뿐인 1~2페이지 정도의 매우 짧은 문서이다.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는 시점에 정관은 큰 변화를 겪는다. 벤처캐피탈은 주로 우선주를 인수하는 방법으로 투자를 하기 때문에 주주사이의 동질성이 무너지고 따라서 다른 종류의 주주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내용을 담아야 하는 정관의 길이가 대폭 길어진다고 한다.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처캐피탈이 정관 대신 다양한 주주간계약을 체결하는 이유를 프라이버시에서 찾고 있다. 기업공개를 계기로 우선주가 보통주로 전환되면 주주간 이해관계를 조정해야할 필요가 줄어들게 되기 때문에 정관은 다시 짧아진다고 하며 저자는 그 예로 천 단어를 조금 넘을 뿐인 아마존의 정관을 든다.

III장에서는 델라웨어주가 정관제도를 운영하는 실무가 고객들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과 정관관련업무를 대행하는 업체의 이익에 치우친 현실을 비판한다. IV장에서는 정관의 기능을 분석적으로 검토한다. 저자는 정관의 기능이 정부와의 계약이나 투명성이 아니라 마치 부동산등기와 마찬가지로 거래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관점에 따르면 정관을 정부에 제출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그것을 일반에 공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저자는 현재 이처럼 스타트업을 덜 투명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요구는 별로 없음을 인정한다. 끝으로 V장에서는 이러한 저자의 관점이 지닌 함의를 제시한다. 과거에는 델라웨어주회사법상 이사회의 의사결정권을 지배주주에게 부여하려면 정관에 규정해야 했으나 Moelis판결 이후의 법개정으로 주주간계약으로도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에 대해서 회사와 거래해야 하는 상대방의 거래 효율성의 관점에서 비판한다. 또한 저자는 델라웨어주가 정관관련업무와 관련하여 고객의 이익을 더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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