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의 허구를 꼬집는 글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오웰(Orwell)의 “동물농장”이나 “1984”이다. 오웰은 그런 고전에 못지않게 에세이도 탁월하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듣고서 짬짬이 Kindle로 읽어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저자의 예리한 통찰과 유려한 필치가 담박에 마음을 끌었다. 그런 글 중 하나가 “Why I Write”란 제목의 수필이다. (국내에서 간행된 조지 오웰 산문선(2020 허진 번역)에 수록되어 있다) 전혀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평생 글을 써온 나로서는 당연히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어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최근 베인브리지가 바로 그 에세이를 토대로 쓴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나처럼 회사법학자인 베인브리지가 같은 텍스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해 바로 읽어보았다. 오늘은 그의 글을 소개한다. Bainbridge, On Doing Legal Scholarship and Finding Your Scholarly Voice (2023.8.10.)
오웰은 작가들이 글을 쓰는 주된 동기를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한다: ①순전한 이기주의(sheer egoism); ②미적 열정(aesthetic enthusiasm); ③역사적 충동(historic impulse); ④정치적 목적(political purpose). 오웰은 이들 동기는 정도의 차는 있지만 모든 작가들에게 공통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베인브리지는 이런 동기는 학술논문에서도 타당한 것 같다고 인정하며 각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①은 요컨대 똑똑한 것으로 보이고 관심을 끌고 싶은 욕망으로 학자들이라면 모두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데 그는 그로 인한 부작용을 경고한다. 전문용어로 가득찬 난삽한 논문을 그 예로 든다.
②는 언어와 그 적절한 배열에 대한 미의식을 가리키는데 베인브리지는 자신도 적절한 표현을 찾아내고 논리적으로 매끄럽고 리듬감 있는 좋은 문장을 완성하는 과정을 즐긴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나머지 글을 마치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글을 쓰는 것은 고통과 아울러 쾌감을 수반하는 작업이기도 한데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법학계에서는 상대적으로 ②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미흡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③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여 그것을 후세에 전달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베인브리지는 이를 로스쿨의 교육목적과 연결시켜 이해한다. 그는 로스쿨 교수는 실무에서 일할 졸업생들에게 유용한 연구를 해야 하며 현재의 법을 파악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이 ③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은 것 같다.
④는 세상을 어떤 방향으로든 바꾸는 것을 가리키는데 베인브리지는 이것이야말로 법학과 가장 관련이 깊다고 평가한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사회와 아울러 법학계도 점점 종족주의적(tribal)으로 변해감에 따라 글쓰기의 스타일도 예상 독자그룹이 같은 “종족”에 속하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지적한다. 그 자신은 몇 년 전부터 델라웨어법의 법관(형평법원 7명과 대법원 5명)을 독자로 상정하고 그들에게 유용하고 설득력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대목에 이르러 과연 이제껏 나는 누구를 독자로 상정하고 글을 써왔는지를 돌이켜 보게 되었다. 그와는 달리 나는 판사들을 설득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딱히 특정집단을 염두에 두고 쓴 기억도 없다. 여러분은 어떠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