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50년 전 처음 미국 회사법을 접했을 때 받은 인상은 주주총회결의취소의 소와 같은 저지형구제수단에 치중하는 한국에 비해서 미국에서는 주주대표소송과 같은 보상형구제수단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 저지형구제수단보다는 보상형구제수단이 융통성의 면에서 낫다고 여겼기에 줄곧 그것을 확대하고 그 실효성을 높이는 것을 주장해왔다. 오늘은 그런 생각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William W. Bratton & Simone M. Sepe, A Theory of Corporate Remedies (2026). U. Penn. 로스쿨의 명예교수인 Bratton교수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지만(예컨대 2021.3.15.자) 공저자인 Toronto대학의 Sepe교수는 처음 소개한다. 인터넷 검색에 따르면 그는 법과 경제학은 물론이고 철학분야에 걸쳐서 수많은 학위를 취득한 특이한 인물로 보인다.
논문은 주로 금지명령(injunctions)과 손해배상 사이의 우선순위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들은 먼저 소유분산된 회사와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회사를 나누고 주로 전자에 초점을 맞춰 검토한다. 저자들은 소유분산된 회사의 경우 법원은 금지명령, 이익반환(profit disgorgement), 명목적 배상(nominal damages)을 먼저 선택하고 손해배상(compensatory and rescissory damages)은 최후에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이러한 결론을 다음 세 가지 관점에서 정당화한다: ①Calabresi-Melamed의 소유권규칙(property rules)과 책임규칙(liability rules)의 관점, ②경제이론적 관점, ③법관판단의 관점.
①과 관련하여 저자들은 소유권은 주주가 아니라 회사가 갖는다는 점을 들어 Calabresi-Melamed의 이론은 회사의 경우에는 설명력을 갖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②와 관련하여 저자들은 일반 계약상 구제수단의 경우 법원이 가치평가를 뒷받침하는 사실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집행비용이 낮은 경우에는 손해배상이 우선적 구제수단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금지나 취소형 구제수단이 정보비용이 낮고 법원의 판단이 잘못될 위험도 낮아서 잘못된 거래를 배제하는데 보다 효과적이라고 본다. 저자들은 회사의 경우에는 일반 계약의 경우와 달리 손해배상의 억지력에 다음과 같은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먼저 회사의 경우 손해배상에 앞서 이사회와 같은 지배구조자체가 신인의무위반에 대한 억지력을 갖는다. 또한 주주에게 지급되는 손해배상금은 실제로 책임보험과 회사보상제도(indemnification)를 통해서 조달되는데 그것은 회사가 부담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결국 주주들이 자신들이 낸 돈으로부터 배상을 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
③과 관련하여 저자들은 판사들이 회사소송에서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수 있는 능력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높은데 반하여 금지나 취소형 구제수단은 그 근거가 되는 절차적 하자를 판단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불확실성이 높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편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회사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법원이 앞서 제시한 구제수단의 순위에 구애됨이 없이 재량에 따라 적절한 구제수단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저자들은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회사의 경우에는 지배주주의 존재로 인하여 이사회를 비롯한 기업지배구조가 신인의무위반에 대한 억지력을 가질 수 없다는 점과 소송비용은 지배주주가 부담한다는 점을 차이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