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상법은 “이사는 재임 중 뿐만 아니라 퇴임 후에도 직무상 알게 된 회사의 영업상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된다”고 하여 이사의 비밀유지의무를 규정한다(382조의4). 이 조문은 통상 외환위기 후 사외이사의 증가로 회사비밀의 누설 위험이 커졌다는 우려에 대처하기 위하여 도입된 것이라고 설명된다. 그러나 당시 상법개정에 관여하던 내가 보기에 그런 위험이 따로 조문을 둬야할 정도로 크다고 느끼는 위원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일본의 당시 상법과 현재의 회사법에도 그런 조문은 없다. 그럼에도 그런 조문을 채택한 것은 당시 상법개정이 주주이익보호에 너무 치우쳐 기업측의 부담이 크다는 재계의 불만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리기 위한 제스추어의 측면이 컸다. 그 조문이 도입된 이후 거의 적용사례도 없고 관심도 끌지 못한 것은 오히려 자연스런 일로 생각된다. 그런데 최근 商事法務에 이사의 비밀유지의무(일본에서는 守秘義務란 표현이 일반적이다)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하는 짧은 글이 발표되어 소개하기로 한다. 松井智予, 取締役会構成員の守秘義務について考える, 2377호(2024.12.15.) 38면. 저자인 동경대 마츠이교수는 중견 여성 상법학자이다.
상법의 비밀유지조항은 “영업상 비밀”이라고 하여 회사의 재산에 속하는 영업비밀의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비하여 저자의 글은 회사의 위법행위를 외부에 알리는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와 관련하여 저자는 먼저 우리나라의 공익신고자보호법에 상응하는 “공익통보자보호법”과 비밀유지의무와의 충돌문제를 검토한다. 그와 관련하여 저자는 다음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①자본시장법과 같은 다른 법령이 보호하는 비밀은 공익통보자보호법이 보호하는 비밀과 어떤 관계에 서는가? ②회사법상 이사의 일반적 의무에 속하는 비밀유지의무보다는 공익통보자보호법이 우선하지만 회사가 특별히 이사가 접하는 모든 정보에 관하여 비밀보호방침을 정한 경우 그러한 방침과 공익통보자보호법과 사이에서는 어느 쪽이 우선하는가? ③공익통보자보호법의 대상이 아닌 사항에 대해서는 회사의 비밀보호방침이 없어도, 또 방치하면 회사에 큰 손해가 발생할 정보에 대해서도 예컨대 이사를 파견한 모회사에 대해서도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되는 것인가?
저자는 이들 문제가 EU, 독일, 미국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를 검토한 후 그와 관련하여 Cyril Moscow, Director Confidentiality, 74 Law and Contemporary Problems 197(2011) 논문을 간단히 소개한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법에 대한 시사점을 정리하는 부분이다. 저자에 따르면 공익통보자보호법은 ①과 관련하여 다른 법령상의 비밀유지의무와의 충돌에 과하여 규정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②와 관련해서도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회사내 부정행위를 발견한 이사는 사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조사 및 시정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①과 관련해서는 공익통보자보호법에 독일법과 마찬가지로 다른 법상의 비밀유지의무와의 충돌 시 처리에 관한 규정을 둘 것을 주장한다. ②와 관련해서는 공익통보자보호법이 일반적 선관주의의무, 충실의무에서 도출되는 비밀유지의무보다는 우선하며 회사의 비밀보호방침도 너무 폭넓게 규정된 경우에는 문제될 수 있다고 본다. 끝으로 ③과 관련해서는 이사가 자신이 접한 정보를 필요한 범위 내에서 자신을 선임한 기관투자자를 포함한 외부에 전달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회사가 그에 대처하기 위해 비밀보호방침을 정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 문제의 해결은 앞으로의 논의에 맡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