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법과 사적자치에 의한 변경

논문을 읽다 보면 그 내용에 감탄한 나머지 이런 글을 내가 쓸 수 있었다면 하고 부러움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늘은 최근에 즐겁게 읽은 그런 논문 한편을 소개한다. Gabriel V. Rauterberg & Sarath Sanga, Altering Rules: The New Frontier for Corporate Governance, 42 Yale Journal on Regulation 291 (2025). Yale Law School의 Sanga교수는 처음 소개하지만 Rauterberg교수는 이미 몇 차례 소개한 바 있고 특히 2000년 소개한 논문(Gabriel V. Rauterberg, The Separation of Voting and Control: The Role of Contract in Corporate Governance (2020)(2020.7.11.자)은 이 논문의 전초작업으로 볼 수 있다.

이 논문은 회사법과 사적자치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이제까지의 논의가 주로 어떠한 회사법원칙이 사적자치에 의하여 변경될 수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이 논문은 사적자치에 의한 변경의 프로세스(process)와 변경된 결과가 적용되는 범위(scope)의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5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장은 델라웨어주에서의 계약설적 회사이론의 진화과정을 살펴본다. 주주의 장부열람청구권의 포기가능성을 시사한 2020년 판결에서 시작하여 주식매수청구권의 포기를 허용한 2021년의 Manti판결을 거쳐 신인의무위반에 대한 제소권의 포기를 허용한 2023년의 Fugue판결에 이르기까지 기업지배와 관련하여 사적자치의 여지를 광범하게 허용해 온 판례의 변화를 간단히 정리한다. 저자들은 계약설의 정점을 찍은 것으로 최근 많은 관심을 끌었던 Moelis판결을 델라웨어주 의회가 뒤엎은 것을 들고 있다(이 판결의 소개로는 2024.3.5.자, 그 판결의 결론을 뒤업는 법개정안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2024.4.2.자, 2024.6.1.자 포스트 참조).

II장은 회사법의 기존 규칙을 변경할 때 적용할 규칙(변경규칙)(altering rules)에 관한 저자들의 이론을 제시한다. 이제까지의 논의가 기존 규칙이 사적자치에 의하여 변경할 수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춘 것에 반하여 변경규칙은 다음 두 가지 물음에 초점을 맞춘다. ①거버넌스 규칙의 변경에 누가 동의해야 하는가라는 변경의 프로세스에 관한 물음과 ②변경의 결정에 누가 구속되는가라는 적용범위에 관한 물음이다. 저자들은 정관, 부속정관, 이사회결의, 주주간계약과 같은 사적자치의 수단들을 누구의 관여로 채택하는가를 변경의 프로세스의 문제로 보고 그러한 사적조치의 수단이 누구까지 구속하는가를 변경의 적용범위의 문제로 본다. 저자들은 변경의 프로세스와 적용범위를 어떻게 설계하는가에 따라 회사내부자들 사이의 교섭이 이루어지는 여건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회사법규칙중 어떤 것이 사적자치에 의하여 변경될 수 있는가를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기업가치를 높이고 경영자의 기회적 행동을 최소할 수 있는 교섭의 여건을 설계하는 것이라고 천명한다. 저자들은 변경규칙은 회사내부자들이 가버넌스의 변경을 교섭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게임이론모델을 이용하여 그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①은 최후통첩게임으로 정관개정이 그 전형적인 예인데 이사회는 주주들에게 찬반의 양자택일의 선택지를 제안함으로써 교섭의 여지를 제한한다.

②는 이른바 루빈스타인모델(Rubinstein Model)로 그 대표적 예는 주주간계약인데 이 경우에는 상호교섭을 통해서 가버넌스의 혁신을 초래할 수 있다.

③은 독재자게임으로 대표적인 예로는 이사회가 CEO겸 지배주주의 회사기회유용을 허용하는 결의를 하는 경우를 든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런 경우에는 변경의 프로세스에는 소수가 참여함에도 불구하고 변경의 적용범위는 회사전체에 미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III장에서 저자들은 주주간계약의 문제를 당사자가 아닌 주주들에게도 계약의 구속력을 미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그 문제의 해결책이 강행규정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주주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도록 변경규칙을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IV장에서 저자들은 앞서 언급한 Fugue판결과 Moelis판결을 소재로 자신들의 견해의 타당성을 제시한다. Fugue판결에서 법원은 신인의무에 기한 청구를 포기하는 주주간합의도 주주들의 의사가 구체적이고 명확한 경우에 효력을 인정하지만 저자들은 다른 주주들의 동의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Moelis판결의 결과를 뒤엎기 위하여 개정된 회사법 122(18)조는 이사회가 특정 주주와의 계약으로 권한을 위임할 수 있는 범위가 너무 넓은 것을 문제라고 보고 보다 많은 주주가 참여할 수 있는 변경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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