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는 회사에게 주주제안을 위임장서류에 포함시킬 의무를 규정한 SEC Rule 14a-8을 폐지하자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그 규정이 폐지되면 주주제안권이 폐지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발생할 것임을 경고한 논문을 소개한 바 있다(2026.2.22.자). 폐지론은 주로 주주제안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에 의해서 주장되고 있지만 오늘은 그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폐지론에 찬성하는 저자의 글을 소개하기로 한다. Alan R Palmiter, Rule 14a-8: A Failed Experiment in Merit Regulation (Still) (2026). 저자는 Wake Forest대학의 명예교수로 증권규제에 관한 개설서(Examples & Explanations 시리즈)를 출간하는 등 증권법의 전문가이다. 본문이 16페이지로 비교적 짧은 이 글은 저자의 소신에 따라 각주를 생략하고 도처에서 자신의 느낌까지 자유롭게 표출하고 있는 점에서 독특한데 주주제안에 관한 논의의 상황을 파악하는데는 유용하다.
지난 포스트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독자의 편의를 위해서 다시 논의의 배경을 간단히 설명한다. SEC Rule 14a-8는 회사의 의무를 규정하면서도 일정한 사유가 있으면 회사가 주주제안을 위임장서류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회사가 배제를 원하는 경우에는 당해 주주제안이 배제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해서 SEC의 비조치 의견서(no-action letter)를 받아 배제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비조치 의견서의 작성과정에서 SEC는 당해 주주제안이 Rule 14a-8에 명시된 배제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내용적으로 심사(substantive review)했었다. 문제는 정권에 따라 SEC의 심사기준이 오락가락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주주제안권에 적대적인 트럼프 정권이 들어선 후 2025년 11월 SEC는 업무부담을 이유로 내용적 심사를 포기하고 배제여부를 기업의 판단에 맡기기로 결정하였다. 기업의 결정이 부당한 경우에는 물론 소송이 가능하지만 그것을 다투는 것은 비용 등을 고려하면 비현실적이다.
저자는 주주제안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EC Rule 14a-8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SEC가 주주제안의 내용에 대해서 간섭하는 것이 일종의 내용규제(merit regulation)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것을 SEC가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글은 서론과 본론을 제외하면 3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1장에서는 Rule 14a-8의 개요와 실무상의 변천을 살펴본다. 2장에서는 Rule 14a-8에 대한 정책적 논의를 정리한다. 3장은 Rule 14a-8이 폐지되는 경우 실제로 어떠한 상황이 펼쳐질 것인가를 논한다. 미국인들에게는 3장이 의미가 있겠지만 내게는 1장과 2장도 유익했다.
1장에서는 Rule 14a-8의 취지가 주주와 경영진간의 의사소통을 돕는 것인데 SEC가 비조치 의견서를 통해서 그 의사소통을 제한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주주제안이 처음에는 “회사 쇠파리”에 의하여 남용되는 측면이 강했지만(2020.7.26.자) 1980년 후반에 이르러서는 포이즌필 등 경영권방어수단의 견제, 이사의 독립성 요구, 경영자보수의 억제 등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주주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도구로 발전하였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기후변화관련 이슈 등 ESG에 관한 주주제안이 증가함에 따라 과거와 달리 SEC의 내용심사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으므로 SEC의 심사기준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중대한 취약점이라고 인정한다.
2장에서는 Rule 14a-8의 의의에 대한 정책적 논의를 담고 있다. 먼저 그것을 주주들의 집단행동(collective action)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하는 찬성론과 주주제안이 기업가치를 증진한다면 규제 없이도 시장압력에 따라 당연히 채택될 것으로 보는 반대론을 소개한다. 이어서 주주제안이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주주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긍정적 측면과 아울러 ESG에 관한 주주제안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혼란상을 언급한다. 저자는 주주제안이 주회사법상 인정되는 권한으로 그 범위를 연방법과 SEC가 규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Rule 14a-8를 폐지함으로써 문제를 주회사법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3장에서는 Rule 14a-8를 폐지한다고 해서 주주제안권의 행사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저자는 주주제안권은 SEC의 하급직원이 아니라 경영자와 주주가 정관이나 부속정관을 통해서 그 범위를 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Rule 14a-8이 폐지되더라도 주주제안에 관한 정보는 위임장서류의 사기금지조항인 Rule 14a-9에 의해서 주주에게 제공될 것이므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