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의 유고와 이른바 “경영지배인”에 관한 몇 가지 의문

평생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지낸 처지라 현실세계 일은 모르는 것이 한 둘이 아니다. 그래도 최근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경영지배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놀랍고 부끄러웠다. 대표이사 유고상태를 겪은 상장기업 임원으로 있는 그 분은 자신의 회사에서는 상법이 예정하는 일시대표이사(§389(3)->§386(2))를 선임하는 대신 경영지배인을 선임했다는 것이었다. 명색이 회사법 연구자라는 나로서도 경영지배인은 금시초문인 직책이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사정을 캐물어 보았다. 일시대표이사 선임을 법원에 신청하지 않은 이유는 기간이 1달 정도 걸릴 뿐 아니라 문제가 있는 경우에 해임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영지배인 선임의 근거를 묻자 본점에 지배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상법 §10를 들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내게 그분은 경영지배인의 등기(“경영”지배인이란 명칭까지 사용하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를 등기소에서 받아줄 뿐 아니라 실제로 경영지배인을 선임한 회사들이 다수 존재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미심쩍어 집에 돌아와 한번 구글링을 해봤더니 놀랍게도 금융감독원 정례브리핑자료(2009.10.27.자)란 것이 뜨는데 그에 의하면 2008년11월 이후 약 1년간 경영지배인 선임이 공시된 사례가 무려 47건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런 중요한 관행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자신의 무지에 대한 자책감이 밀려왔다.

경영지배인을 선임한 회사들은 자본잠식 등 문제 있는 기업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금감원은 경영지배인이 “한계기업의 자금조달 및 무자본 M&A 수단으로 악용”되고 “이들에 의한 자금횡령 등 불법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였다. 금감원은 경영지배인이 “경영전반에 걸친 포괄적 권한 등 사실상 대표이사의 권한을 부여받음에도 불구하고 . . . 주주총회 결의 없이 이사회에서 선임되는 등 법적 근거 및 책임범위가 불분명”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선임자체를 봉쇄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다. 아직 경영지배인 선임 관행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결국 당국의 미온적인 대응에 따른 결과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법률적 관점에서 경영지배인이 과연 “사실상 대표이사의 권한”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본점의 지배인은 본점의 “영업에 관한 재판상 또는 재판외의 모든 행위를 할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본점의 영업”을 “회사의 영업”이라고 해석하지 않는 한 경영지배인의 권한이 대표이사의 권한범위를 모두 포괄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아가 이유로 일시대표이사 선임절차를 밟거나 주총을 열어 정식 대표이사를 선임하지 않고 경영지배인체제가 편리하다는 이유로 그 체제를 만연히 유지하는 이사들의 행위는 적법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대표이사 유고와 관련해서 실제로 보다 당당하게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 것은 이른바 “대표이사 직무대행”이다. 이는 법원이 가처분으로 선임하는 직무대행자(§407(1))와는 달리 정관에 근거하여 선임한다는 점에서 정관상의 직무대행자라고 부를 수 있겠다. (정관상의 직무대행자에 대해서는 김지평, 주식회사 퇴임이사 법리의 실무상 쟁점, 선진상사법률연구 76호(2016.10) 25-27면) 그 전형적인 예는 상장회사표준정관(§34(2))의 다음과 같은 규정이다. “부사장, 전무, 상무 등은 대표이사를 보좌하고 이사회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이 회사의 업무를 분장 집행하며 대표이사의 유고시에는 이사회에서 정한 순서에 따라 그 직무를 대행한다.” 여기서 “부사장, 전무, 상무”는 반드시 이사일 것을 요하지 않는다. 사실 이사인 경우라면 이사회에서 바로 대표이사로 선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실익이 큰 것은 오히려 이사가 아닌 경우일 것이다. 표준정관(§34(1))은 대표이사의 직무를 “회사를 대표하고 업무를 총괄”하는 것이라고 하여 대외적인 대표권과 대내적인 업무총괄권을 가짐을 명시하고 있다. 대내적인 업무총괄권과 관련해서 이사회가 대표이사의 직무를 대행할 자를 정하는 것은 이사회의 업무집행기관 지위에 비추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표권과 관련해서는 상법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해석론상 정관의 규정만으로 이사회에 대행자를 선임할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 있다. 상법은 주식회사가 집행임원제도를 채택하지 않은 경우 대표권은 이사에 대해서만 부여할 수 있는 것으로 정하고 있으므로(§389(1)) 정관으로 이사 아닌 자에게 대표권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실무상 이런 정관상의 직무대행자는 등기할 방법이 없다. 과거 회사법실무에 영향력이 컸던 김교창 변호사는 그에 대한 편법으로 바로 직무대행자를 지배인으로 선임하여 등기하는 방법을 제시한 바 있다(상장 2007.3 83면). 경영지배인이란 아마도 이런 편법을 통해서 선임된 직무대행자를 가리키는 호칭인지도 모르겠다.

정관상의 직무대행자제도는 이미 표준정관에 자리 잡고 있을 정도로 우리 경제계에서는 정착된 관행으로 보인다. 국내학설은 대체로 그것이 당연히 유효하다고 전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주된 근거는 대표이사 유고로 인한 경영공백을 피하기 위한 실무상의 필요라고 할 것이다. 정관상의 직무대행자는 편법적인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정식 대표이사 내지 일시대표이사가 선임되기까지 한정된 기간동안 선임되는 존재로 상정하고 법원이 선임한 직무대행자와 마찬가지로 권한은 회사의 상무에 속하는 행위에 한정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관상의 직무대행자라는 존재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 존속기간이나 권한범위를 해석으로 한정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처럼 경영지배인이나 정관상의 직무대행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긴 했지만 대표이사 유고 시의 간편한 처리에 대한 실무상 수요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의 실무관행이 현행 상법이 예정한 기관구조와 정합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으므로 중지를 모아 좀 더 깔끔한 해결책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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