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에 임박한 회사 이사의 의무에 대해서는 일찍이 논문도 발표한 적이 있고(상사법연구 30권3호(2011) 273면) 블로그에서도 수차 소개한 바 있다(2020.11.9.자, 2020.8.31.자 등). 도산에 임박한 회사의 경우에는 주주와 채권자의 이익충돌이 전면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 결과 생겨나는 현상이 이사가 도산절차의 개시를 미루는 이른바 “지연문제”이다. 각국은 지연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지만 그중 가장 적극적인 나라가 독일과 프랑스로 이들 나라에서는 이사에게 도산절차개시를 신청할 의무를 법으로 명시하고 위반 시에는 형사처벌까지 부과한다. 그 밖의 나라에서도 이사가 도산절차개시를 부당하게 지연하는 등 채권자이익을 해치는 경우에는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일종의 의무(도산의무)를 부담한다. 오늘은 도산의무가 코로나사태와 같은 대규모 위기사태의 경우에는 시스템 리스크를 발생시킬 수 있음을 지적하며 그 리스크에 대처하는 방안에 대해서 검토한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Adi Marcovich Gross, Insolvency and systemic risks: The macroeconomic costs of director duties in crisis, American Business Law Journal, Volume 62, Issue 4 Dec 2025 241-312. 저자는 금년부터 이스라엘 Reichman University에서 조교수로 일할 예정인 젊은 학자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코로나사태와 같은 대규모 위기 시에 이사가 도산의무로 인한 책임을 피하기 위하여 너무 성급하게 도산절차개시를 신청하는 경우 발생하는 시스템 리스크이다. 그 경우에는 국가경제적으로도 문제지만 자산가격의 폭락으로 채권자가 회수할 수 있는 금액도 줄어든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저자는 대규모 위기 시에는 이사의 도산의무를 완화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며 그것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검토한다.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먼저 2장에서는 도산에 임박한 회사 이사의 의무에 관한 기존의 논의를 살펴본다. 3장에서는 도산의무로 인하여 도산이 폭증하는 경우의 문제점을 설명한다. 4장은 비교법적인 고찰로 코로나 시기에 대량 도산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하여 독일, 호주, 미국이 취한 조치를 검토한다. 독일에서는 일시적으로 이사의 도산절차개시신청의무를 면제하였다. 호주에서는 독일에서와 같이 이사가 도산절차의 개시를 신청할 법적 의무는 없지만 새로운 채무를 부담하는 것과 같이 채권자 이익을 해칠 위험이 있는 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민형사책임을 질 수 있다. 다만 호주법은 구조조정을 수행하는 경영자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제하는 안전항규정을 두고 있는데 코로나 시기에는 새로운 임시 안전항규정을 채택하였다. 미국은 이사가 도산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시기에 성급한 도산절차개시로 인한 대량 도산의 위험이 있었으나 정부가 나선 것이 아니라 채권자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계약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자제함으로써 대량 도산이 발생하는 것을 막았다. 저자는 이처럼 정부가 아닌 시장주도의 미국식 접근방식이 여러 면에서 더 우월하다고 판단한다. 5장에서는 이상의 논의가 도산법과 위기대처방안에 주는 정책적 함의를 밝히고 그러한 대규모 위기 시에 적용할 도산의무의 동태적 모델을 제시한다. 저자는 기존의 정책방안들의 장단점을 검토한 후 자신의 방안으로 사전에 계약서에 일정한 대규모 위기 시에 채무상환을 일시적으로 중지할 수 있음을 규정해 두는 방안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