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포스트에 이어 오늘 소개하는 논문도 회사의 목적에 관한 것이다. Mark J. Roe, Corporate Purpose and Corporate Competition (2021). 저자인 Roe교수는 Harvard 법대 교수로 더 이상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회사법과 도산법 전문가학자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0년대 중반 그가 Columbia에서 가르치던 시절로 당시 그는 corporate governance를 정치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일련의 논문으로 한창 명성을 얻고 있던 중이었다. 친절하게도 그는 자신의 논문을 토대로 발간한 저서, Strong Managers, Weak Owners(1994)를 내게 건네줬는데 서명 밑에 날짜가 기입되어있지 않아 정확히 언제 만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 후에도 이런 저런 학술행사에서 마주쳤는데 거창한 주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하기를 즐기는 그는 글도 명쾌하지만 말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편이다.
이번 논문은 회사의 목적 자체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오늘날 ESG나 이해관계자이익 같은 개념이 힘을 얻게 된 원인을 다룬 것이다. 저자는 회사의 목적에 그런 非주주이익을 반영시키려는 사회적 압력을 “purpose pressure”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는 그것을 목적확대압력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저자는 오늘날 목적확대압력이 강화된 것이 미국경제의 산업조직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는 목적확대압력을 미국경제에서 거대기업들이 경쟁의 압력에서 벗어나면서 얻게 된 독점적 이윤을 분점하려는 시도로 파악하고 그런 견해가 타당한지를 실증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논문의 본문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먼저 I장에서는 주주중심주의와 이해관계자주의의 대립을 설명하고 목적확대압력이 경쟁적 산업과 비경쟁적 산업의 어느 쪽에서 더 성공가능성이 높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II장에서는 이 문제를 실증적으로 검토한다. 먼저 미국에서 경쟁의 강도가 약해지고 있는지에 관한 증거를 검토한 후 이어서 경쟁이 약화된 시장에서 이해관계자 이익에 대한 배려가 더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익규모가 클수록 이해관계자에 대한 이익배분이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등에 관한 증거를 살펴본다.
III장에서는 산업의 집중과 독점적 이윤의 증대에 관해서 경쟁의 약화 이외의 대안적 설명에 대해서 검토한다. 기업이 경쟁의 압력에서 벗어나 이해관계자 이익을 배려할 여유를 갖게 되는 원인으로 저자는 규모의 경제, 네트워크 독점, 승자독식의 경쟁에서 승리한 슈퍼스타기업의 대두를 든다. 저자는 또한 최근 미국에서 진행된 주식소유구조의 변화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기관투자자의 주식소유비율이 증대됨에 따라 소수의 기관투자자가 특정 산업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에 동시에 투자하는 경우(이른바 수평적 보유(horizontal shareholding))가 늘고 있다. 그런 경우 기관투자자들은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들 사이에 경쟁이 격화되어 전체 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즉 수평적 보유로 인하여 경쟁의 압력이 줄어들게 되면 목적확대압력을 수용하기 용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IV장에서는 위의 논의가 갖는 몇 가지 의미를 정리한다. ➀먼저 그 규범적 함의로는 독점이나 과점시장에서는 주주중심주의를 뒷받침할 근거가 약화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런 시장에서 주주이익극대화만을 추구한다면 생산을 감소하고 가격을 인상함으로써 소비자의 손해를 가져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➁독점적 이윤의 규모가 큰 기업의 경우에 목적확대압력이 더 커지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본다. 그가 가장 먼저 든 이유는 독점적 이윤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정치적 관심을 많이 끈다는 점이다. ➂ESG가 시장지배력 있는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서 살펴본다.
결론에서 저자는 각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기업의 독점적 이윤을 더 많이 차지하려는 경쟁이 격화되는 경우에는 그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훼손되고 양극화의 심화와 정치적 불안정이 초래될 위험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