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법상 정관자치와 내부관계원칙

연방국가인 미국에서 회사법은 주법에 속한다. 그리하여 미국 회사법을 공부할 때 가장 먼저 마주치는 법리가 바로 내부관계원칙(Internal Affairs Doctrine)이다. 법원이 특정 회사의 내부권리의무관계를 판단할 때에는 그 회사가 설립된 주의 법에 따른다는 원칙이다. 오늘은 이 원칙을 둘러싼 최근 동향을 보여주는 논문 한편을 소개한다. Mohsen Manesh, The Corporate Contract and the Internal Affairs Doctrine, 71 Am. U. L. Rev. (2021, Forthcoming). 저자는 University of Oregon로스쿨에서 회사법을 담당하는 교수이다.

저자는 델라웨어 대법원이 2020년 선고한 Salzberg v. Sciabacucchi판결을 중심으로 내부관계원칙을 검토한다. Salzberg판결에서 대법원은 주주가 1933년 증권법상 갖는 청구권에 관한 소송은 주법원이 아닌 연방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정관규정(federal forum provision)이 유효함을 선언하였다. 이 판결에 따르면 정관은 주주가 주회사법상 갖는 권리만이 아니라 연방증권법상 갖는 권리도 규율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이 판결이 나오기 전에는 일부 학자들은 이 판결의 원심법원과 마찬가지로 증권법상의 권리는 회사 내부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정관으로 규율할 수 없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대법원은 내부관계원칙은 정관의 규율범위를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섭외사법의 원칙을 정한 것에 불과한 것임을 밝힌 셈이다. 이제 정관은 내부관계에서 발생하는 권리 뿐 아니라 외부영역(Outer Band)에 속하는 권리에 대해서도 규율할 수 있게된 것이다.

저자는 이 판결을 두 가지 관점에서 논한다. 하나는 이 판결이 델라웨어주법의 주된 고객인 회사의 수요를 반영한 또 하나의 사례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즉 증권법을 원인으로 하는 집단소송이 주법원과 연방법원에 동시에 제기되는 경우에 발생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으로부터 회사를 구제하기 위한 회사법적 방안을 대법원이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보다 심혈을 기울인 것은 이 판결을 회사에 관한 기본이론인 계약설과 특허설(concession theory)의 관점에서 검토하는 작업이다(III장). 회사를 주회사법의 창조물로 보는 특허설에 의하면 정관자치로 정할 수 없는 영역, 즉 강행규정의 범위가 보다 넓게 인정됨에 반하여 계약설에 따르면 당연히 정관자치가 허용되는 영역은 넓어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Salzberg판결에서 대법원은 원심이 택한 특허설을 배척하고 계약설을 따른 것으로 본다.

이어서 저자는 이처럼 정관을 내부관계원칙의 제약에서 해방시키고 계약설을 적용함에 따라 정관자치의 범위에 속하게 된 “외부영역”에 어떤 것들이 포함될지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IV장). 특히 주주의 모든 청구에 대해서 강제중재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정관규정의 유효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관건이 되는 것은 정관을 연방중재법(FAA)에서 말하는 계약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이다. 저자는 Salzberg판결이 강제중재절차에 관한 정관규정의 유효성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긴 했지만 과연 그처럼 주주소송이 강제중재로 대체되는 세상이 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저자는 정관규정에 의한 주주권의 제약이 심화되는 경우에는 델라웨어주 의회가 주대법원과는 달리 정관자치의 범위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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