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만에 다시 사채에 관한 논문, 그것도 사채시장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이론적으로 분석한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Jonathan Brogaard & Yesha Yadav, The Broken Bond Market(2022). 제1저자는 재무관리학자이고 제2저자인 Yadav교수는 밴더빌트 로스쿨에서 금융법을 가르치는 여성교수이다. 수년 전 밴더빌트와 싱가폴에서 한 번씩 만나본 일이 있는데 말이 워낙 속사포 같이 빨라서 알아 듣기 어려웠다는 인상만 남아 있다.
저자들은 허쉬만(Albert Hirschman)의 exit과 voice란 개념을 이용하여 사채시장의 문제점을 주식시장과 대비하여 설명한다. 주식의 경우 투자자 보호는 (voice에 해당하는) 회사법상 주주의 각종 지배권과 (exit에 해당하는) 시장에서의 처분에 의하여 달성되는데 비하여 사채권자의 보호는 exit과 voice 양면에서 모두 문제가 있다. 사채는 주식에 비하여 훨씬 덜 거래될 뿐 아니라 주주와는 달리 회사법상 보호수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채권자의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계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계약으로 사채권자의 권한을 강화하는 경우에는 사채계약의 표준성이 훼손됨에 따라 사채의 유동성이 저하된다는 것이 논문의 주제이다. 저자들은 사채권자의 구체적인 수요에 맞추어 사채계약을 조정하는 것을 조정가능성(tailorability)이라고 부르고 사채의 유동성을 거래가능성(tradability)으로 부르는데 사채법에서의 근본적인 문제는 이 두 가지가 충돌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사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사채계약에 특수한 규정을 포함시킬수록 사채계약의 표준성이 상실되기 때문에 사채의 유동성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투자자보호의 문제가 사채의 경우가 주식의 경우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논문의 본문은 크게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I장은 “고장난 사채시장”이란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사채권자가 현실적으로 조정가능성과 거래가능성의 양쪽 면에서 모두 제대로 보호받지 못함을 보여준다. III장은 특히 이러한 조정가능성과 거래가능성의 충돌이 사채의 대리문제를 완화하는 능력을 저해한다는 점을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본다. ①사채시장의 낮은 유동성이 사채권자의 계약상 보호장치의 실효성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한다. 저자들은 낮은 유동성으로 인하여 exit 가능성이 낮은 경우에는 사채권자가 경영자의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②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사채의 경우에는 가격이 그 신용위험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채권자가 가격을 감시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③사채권자의 무관심은 단순히 집단행동(collective action)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만이 아니라 계약상의 권한강화와 유동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서로 충돌함에 따라 생겨난 측면이 있다.
끝으로 IV장에서는 이러한 고장 난 사채시장을 고치기 위한 방안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한다. ①사채계약의 표준화를 촉진하기 위하여 일정한 조항들로 구성된 표준계약유형을 마련하고 그 엄격성의 정도에 따라 유형을 다양화한다. 이처럼 사채계약을 표준화하는 경우에는 딜러에 의존하지 않는 전자적 플랫폼을 통한 거래가 용이해짐으로써 유동성이 증가할 것이다. ②정책담당자 및 시장참여자들은 사채권자가 권리실현하는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구조적 해결책을 개발할 것을 촉구한다. 그와 관련하여 저자들은 한편으로는 입법을 통해서 수탁자의 직무를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래플랫폼이 사채권자를 위해서 발행회사 감시 및 데이터서비스를 제공하는 수탁자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허용할 것을 주장한다. ③시장참여자들의 수요에 맞게 설계된 사채의 거래를 위하여 딜러중심의 장외시장을 계속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