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만에 국내 서적을 소개한다. 한진칼과의 경영권다툼으로 유명한 KCGI 강성부 대표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우리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지배구조의 현실 세계에서 발생하는 현상에 관한 심층적인 정보와 분석을 담은 문헌은 드물다. 저자는 우리 지배구조 역사상 하나의 이정표로 평가될 경영권쟁탈전을 비롯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일선에서 진두지휘한 투자자라는 점에서 그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연구자로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우리 기업지배구조의 현실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다. 저자는 연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용의 상당부분은 연구자도 참고할만한 유용한 정보와 주장을 세시한다. 다만 저자의 신중한 성격이 반영된 탓으로 짐작되지만 실제 인물이나 사건에 관한 적나라한 서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화끈한 스토리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저자가 우리 지배구조의 최대의 문제로 지적한 것은 대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에 인센티브가 불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는 내 평소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우리 기업의 경영자들은 주가가 올라가는 것을 오히려 꺼리는 사례가 많다는 점을 여러 곳에서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지배구조의 가장 근본적 과제는 이러한 인센티브의 괴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한창 논의가 많은 이해관계자 이익의 보호는 그 다음에 고려할 과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저자는 경영자가 주가상승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로 과도한 상속세부담을 든다. 저자는 지배주주가 상속세부담을 피하며 자식에게 경영권을 이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감몰아주기와 같은 이익충돌거래와 불공정한 M&A 등을 든다. 우리 기업의 배당성향이 상대적으로 낮고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존재하는 것은 이러한 인센티브의 괴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저자는 기업지배구조의 개선하여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배당과 상속에 대한 세율 인하라는 당근과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한 편법적 상속의 여지를 봉쇄하는 채찍을 동시에 처방한다.
이 책의 또 하나의 미덕은 술술 잘 읽힌다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개인적으로 눈길을 끈 몇 가지 대목을 인용하기로 한다.
- 64.4%를 차지한다. (미국, 일본은 각각 32.5%와 37.5%) “금융자산도 예금, 보험, 연금이 대부분이어서 주식은 전체 가계 자산의 5.4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32면).
- : “한국은 대주주가 배당도 하지 않고, 일감 몰아주기를 하다가 회사를 떼었다 붙였다를 몇 번 하면 일반 주주는 거지가 되는 시장인데 뭐하러 투자하겠습니까?”(38면)
- “총수 일가 특히 자녀들이 지분을 많이 가진 회사가 일감 몰아주기 회사로 선택된다. 업종은 매우 다양하지만 SI, MRO, 물류, 광고, 부동산 시행사와 같이 계열사 매출 비중이 높고, 제품을 표준화하기 힘들며, 프로젝트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어서 정상 가격을 알기 어려운 업종을 주로 이용한다.”(57면)
- “정치의 힘보다 자본의 힘이 더 센 것 같다.”(62면)
- 우리나라의 경우 오랫동안 소유 경영이 일반화되다 보니 대주주에게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책임지는 경영을 해본 탁월한 전문경영인이 드물다는 점에서 전문 경영 체제로 전환을 하더라도 이에 대한 면밀한 내부 검증 과정이 필수적이다.”(91면)
- 기업과 투자자 사이에서 기업의 이익만을 중시하는 언론의 편파적 보도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투자자의 이익도 대변할 수 있도록 언론의 수익원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96면)
- : “우리는 한국 기업이 미국 기업에 비해 PER로는 1.6분의 1, PBR로는 3.5분의 1로 거래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지 특정 기업들의 경우 PBR이 0.2배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116면)
-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큰 피해를 초래한 분식회계 범죄를 저질러도 임직원 처벌은 징역 7년 이하 또는 벌금 7천만원 이하에 불과하다. 기업에 대해 부과되는 과징금도 최대 20억원에 불과하다. 회계법인에 내린 제재도 등록 취소나 1년 이상의 업무정지 같은 중징계는 한 건도 없었다. 2조원대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STX조선해양의 감사를 맡은 삼정KPMG가 받은 징계는 해당 법인에 대한 감사업무 제한밖에 없었다.”(177면)
- 대 그룹 가운데 외환위기 이후 20년간 외형을 지킨 그룹은 13개(현대, 삼성, 엘지, SK, 한진, 한화, 롯데, 금호, 두산, 대림, 효성) 정도다. 그중에서도 금호와 두산은 실질적인 워크아웃 상태여서 30대 그룹에서 제외하는 것이 맞다.”(18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