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자거래는 이 블로그에서도 몇 차례 다룬 적이 있지만(예컨대 2020.10.12.자; 2021.5.3.자) 내가 오래 동안 관심을 가져온 테마이기도 하다(가장 최근의 글로 김건식, 관계자거래의 규제(정순섭/천경훈 편저, 기업법금융법의 주요흐름(2001~2020)(홍문사 2022) 5면 이하). 관계자거래의 규제와 관련하여 유럽에서는 기업집단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의 경우에는 통상의 충실의무규정을 엄격히 적용하는 대신 기업집단의 이익(group interest)을 위한 계열회사지원을 허용하는 특별한 규정을 적용하자는 제안이 여러 차례에 걸쳐 행해진 바 있다. 이런 제안은 대부분 유럽 각국의 저명한 학자들의 공동작업에 기초한 것일 뿐 아니라 일부의 경우에는 EU의 요청에 따라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그 권위를 무시하기 어렵다. 2017년 유럽의 저명 학자들이 작성한 유럽모범회사법(European Model Companies Act: EMCA)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오늘은 그러한 기업집단특별법(group law)의 문제점을 지적한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Luca Enriques & Sergio Gilotta, The Case Against a Special Regime for Intragroup Transactions (2022). 저자인 Enriques교수는 이태리 볼로냐대학 교수와 증권감독위원회 위원을 거쳐 현재 옥스포드대학교수로 있는 회사법학자이다. 20년 전 처음 콜롬비아대학의 세미나에서 만났을 때에는 새파란 젊은 학자로 이태리 액센트가 너무 심해서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발표내용이 좋아서 참석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지금은 세계적인 학자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지극히 소탈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어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논문의 본문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II장과 III장은 기초를 이루는 부분으로 II장에서는 계열회사에 소수주주가 존재하는 기업집단, 즉 MCG(minority-co-owned groups)에 초점을 맞추어 그 구조가 터널링을 촉진한다고 지적한다. 우리 재벌도 MCG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이 논문에는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터널링은 관계자거래가 아닌 非거래적 방법으로도 행해지고 그쪽이 더 규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III장에서는 MCG를 정당화하는 근거에 대해서 검토한다. 저자들은 독립기업이 아닌 기업집단의 구조를 택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해서 MCG구조를 취하는 것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단언하는 한편으로 소수주주이익보호가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MCG구조를 취할 필요가 있는 몇 가지 상황을 설명한다. 저자들에 의하면 이러한 MCG의 필요성 때문에 회사법은 MCG자체를 금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열회사사이의 거래에 대해서 특별히 완화된 기준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IV장에서는 앞서 언급한 기업집단특별법에 관한 제안들을 소개한다. 이들 제안은 기본적으로 독일, 프랑스, 이태리의 기업집단법을 토대로 한 것이란 점에서 이들 각국법의 골자를 살펴본 후 각종 제안과 특히 유럽모범회사법의 내용을 설명한다. 저자들의 초점은 적절한 보상만 제공된다면 집단이익을 위하여 계열회사이익을 희생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부분이다. 논문의 핵심인 V장에서는 기업집단특별법이 편익보다 비용이 훨씬 더 크다고 주장한다. 즉 특별법이 집단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데 수반되는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그룹경영의 유연성을 조금 높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비하여 터널링의 가능성이 대폭 확대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특히 노골적인 터널링의 경우가 아니라면 계열회사가 손해에 대한 보상에 해당하는 이익을 얻었다는 점이 너무 쉽게 인정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하여 결론에서 저자들은 만약 집단적 이익을 위한 계열회사의 희생을 보다 너그럽게 인정하는 특별법을 도입하는 경우에는 그 적용을 회사의 선택에 맡기는 방식(opt-in)으로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