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구생활에서 마주쳤던 연구주제 중에는 시류에 따라 반짝하고 사라져버린 것도 있지만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떠오른 질긴 생명력을 지닌 것도 있다. 후자의 예로는 앞서 언급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대표적이지만 오늘 소개하는 차등의결권주식도 그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내가 차등의결권주식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86년 당시 이른바 1%우선주라는 것이 한창 주목을 끌었다. 1987년 “무의결권우선주식에 대한 소고”란 논문을 발표했는데(증권 52호(1987.6)) 그것이 아마도 그에 관한 최초의 글이었을 것이다. 1%우선주란 것 자체가 우리나라에 특유한 증권이었기 때문에 당시 참고할 문헌이 없어 애를 먹었다. 그 때문에 이 글에는 각주가 거의 달려있지 않다. 당시 우리 법학계에서는 의결권은 주식의 고유한 요소란 믿음이 확고해서 무의결권주에 대한 반감이 지배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무엇이 무엇의 본질이기 때문에 건드릴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은 합리적인 탐구를 가로막는 폭론으로 여기는 나로서는 결국 이 문제는 사적자치에 의한 수정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의 정책적인 문제라는데 까지 생각이 미쳤다. 문제는 의결권 부분을 수정하는데 한계가 있는지, 한계가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였는데 그 부분은 당시 충분히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글을 발표한 직후 학부 때 경제학을 배웠던 임원택 선생의 화갑기념논문집(사회과학의 제문제, 1988)에 기고요청을 받고 “주식과 의결권”이란 논문을 쓰게 되었다. 당시에는 마침 미국에서 차등의결권에 관한 논의가 막 시작된 단계였기 때문에 Gilson 교수의 논문 등을 참조할 수 있었다. 아마도 차등의결권주식에 관한 국내논문으로는 이것이 처음일 것이다. 그 후 1%우선주에 대한 논문은 봇물 쏟아지듯 발표되었다. 그런데 차등의결권주식에 관한 내 논문은 아무런 반향을 얻지 못했다. 그건 기념논문집의 한계일 수도 있고 테마가 우리 실정에 비추어 너무 앞선 것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논문은 1994년 무의결권우선주에 관한 연구라는 상장협연구보고서를 발간할 때 그곳에 포함시켰는데(회사법연구II(2010) 219-246면에 수록), 그것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참 지나서 국내에서도 차등의결권주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관련 논문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미국에서만 관심을 끌었지만 이제 차등의결권주식은 세계적으로 열띤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차등의결권주식이 부상한 배경에는 물론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인터넷관련 기업이 존재한다. 싱가폴, 홍콩 등 1주1의결권원칙을 고수하던 거래소들이 최근 이들 고성장 기업을 유치하기 위하여 상장규정을 변경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심지어 런던거래소의 우량시장(Premium Segment)마저도 이런 흐름에 동참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첨부문서 참조). 그 경우 우리나라에서도 차등의결권주식의 발행을 허용해야한다는 목소리가 한층 더 힘을 얻을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