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법상 사적자치 수단으로서의 주주간계약

회사법에서의 사적자치의 역할은 회사법학에서의 근본문제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는 사적자치를 넓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은 이에 관해서 다소 회의적인 견해가 담긴 논문을 소개한다. Jill E. Fisch, Private Ordering and the Role of Shareholder Agreements(2020) 저자인 Fisch교수는 수년 전 중국 북경의 증권감독관리위원회를 방문했을 때 만난 적이 있는데 활달하고 소탈한 인상의 회사법과 증권법 전문가이다.

회사법에서 사적자치의 수단으로 동원되는 것은 정관, 부속정관, 주주간계약이다. 최근에는 주주간계약이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2020.7.11.자 포스트) 저자는 조합형 폐쇄회사를 제외한 주주 수가 많은 일반 회사에서 사적자치의 수단으로 주주간계약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법원은 대체로 주주간계약의 효력을 긍정하고 있다. 법원은 사적 주체가 (심지어 헌법적 권리도 포함한) 법적 권리를 계약으로 포기하는 것을 유효로 보는 일반원칙에 따라 주주간계약을 주주가 자신의 권리를 개인적으로 포기하는 유효한 행위로 파악하는 것이다. 최근 델라웨어 형평법원은 주식매수청구권을 포기하는 주주간계약을 유효로 선언한 바 있다. 현재 미국에서 주주간계약은 대형 비공개회사(private companies)에서 폭넓게 이용되고 있는데 저자는 형평법원이 이런 현상을 긍정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저자는 주주간계약이 투명성결여, 법원의 실수, 표준화, 주주평등, 예측가능성을 포함한 투자자 보호의 관점에서 문제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사모를 통한 자금조달이 활성화됨에 따라 대형 비공개회사가 늘고 있는 현실(2020.7.12.자 포스트)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공개여부를 불문하고 회사에서 사적자치의 수단으로는 주주간계약 대신 정관이나 부속정관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관이나 부속정관을 통한 사적자치는 주주의 묵시적 동의를 근거로 하지만 주주간계약에는 명시적으로 동의한 주주에게만 구속력이 있다. 따라서 주주간계약은 회사형태에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통일성, 보편성, 확실성을 해친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다. 저자는 기업지배와 관련된 권한인 회계장부열람권, 신주인수권, 이사임면권, 주식매수청구권, 주식양도에 대한 제한, 결의요건 강화 등은 주주간계약의 대상으로 할 수 없다고 본다. 한편 저자는 주주간계약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주주가 개인자격으로 행사하는 권한에 한정된다고 하고 있다. 양자의 구분은 분명치 않은 면이 있다. 의결권행사의 경우 기업지배와 연관이 있지만 전통적으로 의결권은 순전히 개인자격으로 행사한다는 이유로 주주간계약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나아가 저자는 법령이나 정관에 위반한 주주간계약은 무효로 보아야한다는 견해를 택하고 있다. 만약 회사법의 강행규정이 현실에 맞지 않는 경우에는 법에서 명시적으로 사적자치의 여지를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며 그 한 예로 델라웨어회사법상 회사에 의한 회사기회 포기를 허용하는 조항(§122(17))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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