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법강의와 시스템적 접근방식

퇴직 후 강의는 남의 일이 되었지만 어떻게 하면 회사법강의를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오늘은 최근 발표된 그에 관한 글을 소개한다. Lynn M. LoPucki & Andrew Verstein, The Systems Approach to Teaching Business Associations (2020). 이 글은 저자들이 최근 발간한 새로운 형식의 회사법교재, Business Associations: A Systems Approach (Aspen Casebook Series)을 홍보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지금도 회사법을 강의하는 분들은 모두 효과적인 강의방법에 대해서 다소간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돌이켜보면 초기에는 상법 회사 편에 담긴 각종 법리의 개념적 설명에 치중하다가 차츰 현실과 이론을 가미하는 쪽으로 변화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본격적인 회사법리가 적용될 만한 현실적인 문제상황을 찾기도 어려워 불만이 있어도 법리의 설명에 치중하는 강의방식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경제발전에 따른 회사관련분쟁의 질적, 양적 변화와 로스쿨 도입에 따른 판례교재 채택도 강의방법의 전환을 모색하게 된 배경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30년 전의 강의와 퇴직 무렵의 강의를 비교하면 아마도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저자들이 이른바 시스템적 접근방식을 통해서 추구하는 것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강의의 현실적응성을 추구한다는 점 정도가 아닐까 여겨진다.

저자들이 글에서 설명하는 교재의 특징은 다음 3가지이다. ➀법이 적용되는 (개념적인 것과 대립되는) 실체적(physical) 시스템의 맥락에서 법을 설명한다; ➁이 시스템에서 법이 수행하는 기능에 따라 법칙과 개념을 분류함으로써 법공부를 체계화한다; ➂학생들에게 자료를 제공하여 그 시스템의 작동에 관한 지식을 요하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다.

➀에서 시스템은 특정 목적의 실현을 위한 요소들로 구성되어있다. 저자들은 physical이란 형용사 대신 concrete를 쓰기도 하고 연구자에 따라서는 실체적 시스템을 구조물(architecture)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법을 개념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법원사무관, 법관, 변호사사무실, 법률문서, 이사회 등 현실적인 요소들과의 관련하여 파악한다는 접근방식이다. 저자들은 시스템의 목적을 실현하는데 법의 적용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 실체적 시스템이 법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회사법이 관련된 시스템에서도 법은 여러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고 적용되는 법은 회사법 말고도 노동법, 소송법, 세법, 도산법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점은 나도 절감하던 부분이다. 회사법강의가 어려운 점은 회사가 관련된 시스템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회사법이 기여하는 부분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자칫 전체에 대한 이해 없이 회사법 법리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그것이 과제해결에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를 간과하기 쉽다는 것이다. 또 법리도 개념적으로만 접근하는 경우에는 구체적인 실무상의 전개에 대해서 무지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편으로 공감하지만 반대로 구체적인 실무정보의 제공을 강의에서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➁이 책은 회사법을 기능에 따라 8가지로, 즉 (i)의사결정, (ii)유한책임, (iii)기업재무, (iv)합병 및 분할, (v)경영자책임, (vi)주식양도, (vii)출자회수, (viii)사회와의 관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특기할 것은 책에서 커버하는 3가지 기업형태인 주식회사, 유한책임회사, 조합에 대해서 이런 8가지 기능별로 각각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 기능에 대한 설명에서 3가지 기업형태를 함께 설명하는 체제를 택하고 있다.

➂에서는 저자들이 생각하는 문제 중심 수업방법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들에 의하면 학습은 3단계로 이루어진다. (i)학생들이 수업에서 다룰 실체적 시스템에 관한 부분을 미리 공부한다. (ii)학생들은, 단독으로 또는 그룹으로, 예습한 법의 내용을 적용하여 변호사의 관점에서 가상적인 고객이 의뢰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본다. (iii)수업시간에는 주로 학생들이 작성한 해결책을 중심으로 토의한다. 교수는 고객의 역할을 맡아서 발표자인 변호사역할의 학생에게 질문하는 등 토론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는다. 문제는 특정 법적 쟁점에 대한 답을 묻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바를 주어진 시간과 비용 범위 내에서 어떻게 실현시켜줄 것인가를 묻는 것이어서 답을 하는 데는 회사법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저자들은 이것이 결국 학생들이 실무를 시작하면 하게 될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판례를 대하는 태도이다. 저자들은 법률정보를 얻는데 판례에만 의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하고 있다. 실제 델라웨어 법원판결들은 장황한 것에 비하여 실제 유용한 정보는 적다는 이유로 교재에 인용하는 판례는 판결문을 4페이지 미만으로 대폭 압축하여 사용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판례가 선언하는 이른바 black letter law를 중시하는 초기의 학습방식으로 다소 회귀한 측면도 있다.

Kindle판도 근 300달러에 달하는 이 책은 아직 나도 보지 못했다. 저자들의 강의방법은 확실히 매력적이지만 수업에서 판례에 관한 문답을 하는 것도 벅찬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는 너무 이상적으로 들리는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적절한 문제를 개발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그에 대한 토의를 제한된 시간에 적절하게 이끄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따르지 않는 변화가 어디 있겠는가? 앞으로도 장기간 회사법강의를 맡아야할 분들로서는 한번 부분적으로라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지? 퇴직자의 무책임한 처지가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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