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입법과 내러티브의 힘

미국 회사법 학자들 중에는 거시적 관점에서 법현상의 동태를 설명하는 것이 능한 이들이 존재한다. 하바드 법대의 Mark J. Roe교수는 그런 이들 중 한 사람이다. 오늘은 그가 최근 발표한 “거창한” 논문 한편을 소개한다. Mark J. Roe & Roy Shapira, The Power of the Narrative in Corporate Lawmaking (2020)

저자들이 대상으로 삼은 것은 내러티브(narrative)가 갖는 힘이 중요성이라는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특히 주목한 것은 이른바 단기주의이다. 경영자들의 단기주의가 미국경제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언설은 매우 광범하게 퍼져있다. 단기주의의 폐해로는 고용, R&D, 자본투자의 위축을 들고 단기주의를 초래하는 동인으로는 단기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주식투자자들과 주주행동주의를 들고 있다. 이런 단기주의의 폐해는 정책담당자나 정치인은 물론 법관, 규제기관 등도 널리 공감하고 있지만 막상 그 학술적 근거는 그다지 공고하지 않다. 저자들은 이처럼 특정 견해가 근거가 약함에도 불구하고 확산되는 이유에 대해서 주목하고 그 이유를 내러티브의 힘에서 찾고 있다. 그들은 견해들 중에는 다른 견해들에 비해서 더 쉽게 지지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그 요인을 내러티브의 힘에서 찾고 있다. 그들은 단기주의의 내러티브에는 그 힘을 강화하는 세 가지 요인이 존재한다고 한다.

➀은 함축(connotation)으로 단기주의란 표현 자체가 장기적 책임(long-term commitment)에 비하여 불안정, 신뢰결여, 불확실성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내포한다는 것이다.

➁는 범주의 혼동(category confusion)으로 환경훼손이나 근로자부당대우와 같은 부적절한 기업행위는 실제로는 인센티브 불일치 같은 다른 요소에서 기인한 것으로 경영자의 time-horizon과는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단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처럼 흔히 치부됨으로써 단기주의가 실제보다 더 만연해있고 해악이 큰 것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➂은 확인(confirmation)으로 단기주의는 전달이 쉽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또는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이익집단에 의하여,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다.

입법추진과정에서의 이러한 내러티브의 역할에 대해서는 정치학이나 경제학에서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으나 회사법학에서는 관심을 갖지 못했다. 과거 회사법이나 증권법은 대중적 관심을 끌지 못한 분야여서 회사법논의는 주로 법리의 변천이나 회사실적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내러티브의 역할에는 관심이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포퓰리즘과 소셜미디어가 발달된 시대에는 회사입법에서 내러티브가 갖는 힘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저자들은 회사의 목적에 관한 최근의 관심도 그 한 예로 보고 있다. 저자들은 특정 내러티브와 행동과의 관련을 증명하는 것은 어렵지만 내러티브의 힘은 입법의 성공과 실패를 정치경제적으로만 설명하는 것의 한계를 보완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자들은 내러티브의 힘이 갖는 문제점은 실제로 중요한 다른 문제들에 대한 진정한 대처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단기주의 같은 강력한 내러티브에 집중하다보면 정작 중요한 R&D감소, 경제력집중, 환경훼손, 근로자부당대우 같은 문제들에 대처하는 일이 뒷전으로 밀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의 개정을 둘러싼 논의가 아직 진행 중이다. 이 논의가 어떤 식으로 진전될 것인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 논문에서 말하는 내러티브의 힘이란 개념은 현재의 힘겨루기를 이해하는데도 유용한 하나의 시각을 제공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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