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민주주의(shareholder democracy)란 표현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흔히 사용된다. 주주민주주의는 공개회사 맥락에서 흔히 사용될 뿐 아니라 회사운영에서 지향해야할 목표 내지 가치 같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주주이익 지상주의(shareholder supremacy)가 회사운영에서 주주이익을 앞세우는 것이라면 주주민주주의는 회사의 의사결정에서 주주의 참여를 강조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간혹 마주치는 주주민주주의 지지자들 중에는 상장회사의 주주총회가 진정한 토론의 장이 되지 못하고 1시간도 걸리지 않는 형식적인 행사에 그치는 현실에 대해서 개탄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나는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 사항을 주주가 결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평상시의 회사 운영에 대해서 주주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반드시 이상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을 품었다. 회사가 큰 문제없이 운영되고 있다면 주주가 관심을 끄고 각자 자기 일에 몰두하는 것은, 그리고 그 결과 주주총회가 소수의 주주만이 참석하는 따분한 연례행사로 진행되는 것은 오히려 분업의 면에서 별로 나쁠 것이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마침 Bainbridge교수가 며칠 전 자신의 블로그에 나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글을 올렸기에 그 글을 소개한다. “There is no such thing as shareholder democracy to reclaim.”
그의 글은 Yaron Nili와 Megan Shaner가 발표한 최근 논문, Back to the Future? Reclaiming Shareholder Democracy Through Virtual Annual Meetings (August 26, 2020)에 대한 반론의 형식으로 쓴 것이다. 대상이 된 논문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코로나 사태로 인한 인터넷주주총회의 확산을 통해서 주주민주주의를 부활시킬 수 있다는 취지를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서 Bainbridge교수는 ➀주주민주주의는 과거에도 없었고 ➁지금에 와서 그것을 창조할 필요도 없다고 주장한다. ➀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대한 Berle와 Means의 견해와 관련이 있다. 이들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19세기 말에 출현하였다고 보았지만 콜럼비아대학 교수였던 Walter Werner에 의하면 실제로 미국에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거의 건국 초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➀도 흥미롭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➁이다. 그는 주주민주주의가 “강력한 수사”(powerful rhetoric)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정치적 민주주의를 존중한다는 이유만으로 회사민주주의를 추구할 필요는 없다고 단언한다. 뉴잉글랜드의 주민회의처럼 대도시를 운영할 수 없는 것처럼 대규모 상장회사를 직접민주주의에 의하여 운영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주주제안권의 대상이 확대되어 남용되는 현상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문제되고 있지 않지만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미국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이사중심주의자로 주주권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Bainbridge교수의 견해를 내가 전부 지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주주의 역할을 어느 범위에서 허용할 것인가는 근본적이면서도 미묘한 문제인데 주주민주주의란 표현은 그 문제에 대한 차분한 접근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주주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경청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