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기업은 주식소유가 분산되어 “오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일본에도 가족기업은 존재하지만 우리나라 재벌처럼 소수 지분으로 대를 이어 물려주는 지배소수주주체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26.자 포스트에 이어서 이런 통념과는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최근 논문 한편을 소개한다. Morten Bennedsen et. al, Dynastic Control Without Ownership: Evidence from Post-War Japan (2020) 저자들은 4명의 경영학자들로 국립싱가폴대학의 일본전문가인 Yupana Wiwattanakantang교수는 몇 차례 학회에서 만난 적이 있는 매우 활발한 여성학자이다.
이 논문에서는 일본 기업을 크게 ➀전통적인 가족기업, ➁비가족기업, 그리고 그 사이의 ➂소수지분을 보유한 가족이 대를 이어 지배하는 왕조적기업의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저자들은 ➂을 “소유에 뒷받침되지 않는 왕조적 지배”(dynastic control without ownership)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표현은 우리 재벌기업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➂은 가족지분이 적으면서도 지배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재벌기업과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우리 재벌기업의 지배주주는 경제적지분이 낮더라도 계열회사에 의한 주식보유의 방법으로 의결권을 확보하고 있는데 비하여 ➂의 경우 가족주주는 의결권지분도 경제적지분과 마찬가지로 낮은 수준에 머무른다는 점에서 우리 재벌기업과는 차이가 있다.
저자들은 ➂을 가족지분이 5%에 미달하면서도 창업자가족이 CEO를 맡고 있는 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➀은 가족지분이 5%를 넘고 가족이 CEO를 맡고 있는 기업으로 정의하는데 비하여 ➁는 가족지분이 5%미만이면서 가족이 CEO직을 맡는 것을 완전히 포기한 기업으로 정의한다. 그들에 의하면 ➂은 전체 상장회사의 7.4%에 달한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카시오(Casio), 스즈키, 토요타자동차 등을 들고 있다. 저자들은 ➂을 ➀과 ➁와 비교하고 있는데 그들에 의하면 ➂은 ➁에 비해서는 회계상으로 우월한 실적을 보이지만 ➀에 비해서는 실적이 떨어진다고 한다.
➀은 ➂을 거쳐 ➁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 보통인데 저자들은 ➀전통적 가족기업을 ➂왕조적 기업으로 전환시키고(1단계) ➂을 다시 ➁비가족기업으로 전환시키는(2단계) 동인을 분석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1단계에서의 동인은 성장을 위한 자금수요이고 2단계에서의 동인은 전통, 교육, 재능과 같은 가족의 자원이 감소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특히 흥미를 끄는 것은 2단계의 동인인데 저자들은 이익률이 높은 기업은 가족 CEO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고 또한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랜 기업일수록 전환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또한 특이한 것은 가족구성원, 특히 일류학교출신의 가족구성원이 이사회에 참여하는 경우에는 ➁비가족기업으로의 전환이 늦어진다고 한다.
저자들은 대표적인 왕조적 기업인 카시오, 스즈키, 토요타자동차가 적은 지분으로 어떻게 왕조적 지배를 유지하고 있는지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카시오의 경우에는 가족구성원의 재능이 지배권의 승계를 뒷받침하였으며 스즈키 경우에는 마땅한 혈족이 없는 경우에는 유능한 사위를 맞아들이는 일본적인 방법으로 왕조적 지배를 이어왔다고 한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토요타자동차의 사례이다. 토요타는 계열회사를 통한 주식보유와 창업자가족의 이사회참여를 통해서 왕조적 지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재벌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토요타의 경우에는 중간 중간에 전문경영인이 CEO를 맡기도 하였으나 그 기간에도 창업자가족은 이사회참여를 통해서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불가사의한 것은 창업자가족에 대한 일본 투자자들의 신뢰인데 2009년 49세의 토요타 아키오가 오랜 전문경영인 시대를 마무리하고 회장에 취임했을 때 토요타의 주가가 3%나 상승했다고 한다. 어쩌면 토요타형 지배는 한국의 재벌이 장차 비가족기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거쳐 갈 수도 있는 징검다리 같은 과정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