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법을 뒤늦게 계수한 한국의 법학자에게 비교법연구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오늘은 비교법연구와 관련하여 유익하다고 판단되는 최신 논문 한편을 소개한다. Donald C. Clarke, Anti Anti-Orientalism, or is Chinese Law Different? American Journal of Comparative Law, vol. 68, no. 1 (2020). 저자는 George Washington 로스쿨에 재직하는 중국법 전문가로 Chinese Law Discussion List라는 중국법에 관심 있는 학자, 실무가들을 위한 이메일 네트워크(CHINALAW@HERMES.GWU.EDU)를 운영하고 있다. 저자는 중국법의 모든 분야를 커버하지만 특히 회사법분야에 조예가 깊어 그에 관한 논문이 많다. 저자와의 개인적인 인연에 대해서는 뒤에 따로 언급하기로 한다.
이 논문은 중국법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동시에 비교법연구 일반에 적용될 수 있는 反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은 Edward Said의 명저 “Orientalism”(1978)에 의해서 널리 알려진 개념으로 18, 19세기 유럽제국주의자들의 관점에서 중동지방의 문화를 바라보는 부정적이고 편향된 총체적인 시각을 가리킨다. 이런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은 서구인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 서양과 동양의 차이를 지적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반감이 확산되었는데 이를 反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이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反오리엔탈리즘이 이제 비교법학계에서도 주류적 사고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反오리엔탈리즘의 영향으로 법제도의 면에서 동양, 특히 중국과 서양의 차이를 지적하는 것이 어려워졌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런 의미의 反오리엔탈리즘에 대해서 열렬하게 반대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오리엔탈리즘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고 反오리엔탈리즘이 서양과 동양, 특히 중국과의 차이를 지적하는 견해를 오리엔탈리즘으로 치부하는 태도를 비판한다. 그는 중국의 법제도가 개인의 권리에 터잡은 서양식 법제도와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 상당한 근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바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반박할 것이 아니라 차분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서로 다른 개념에 대해서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反오리엔탈리즘의 대표적인 폐단으로 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와 관련하여 저자는 중국에 존재하는 사회질서유지시스템(system for maintenance of social order)를 서양에서와 같이 법제도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에 대해서 상당한 지면을 바치고 있다. 저자는 서양법에 대비한 중국법의 평가와 관련하여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고 있지만 중국법의 이질성을 주장하는 견해에 기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원래 중국학(아마도 역사)을 전공하던 도중에 포기하고 로스쿨에 진학한 사람이다. 이 논문은 중국연구전반에 관한 저자의 온축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역작으로 중국만이 아니라 非서구사회의 법을 바라보는 시각을 정립하는데 매우 유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끝으로 저자와의 인연에 대해서 한마디 남기고자 한다. 저자를 처음 만난 것은 저자가 내가 다녔던 워싱턴대학에 재직하던 시절인 1990년초 UCLA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였다.(당시 컨퍼런스 주최자 중 한명이 지금 유명해진 Ramseyer교수였다.) 컨퍼런스를 마친 후 나는 시애틀로 향하는 밤비행기에서 우연히 Clarke교수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는 나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바로 책을 꺼내 삼매경에 빠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책을 덮고 비로소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다음날 자신이 맡은 물권법 강의가 있어 준비를 했어야 했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나는 황적인 선생과 “중국법연구”(1989.6)라는 중국법 전반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제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기 때문에 자연히 화제는 중국법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 보고서를 작성할 당시 – 지금 기준으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 나는 중국어도 못하던 처지였던 터라 중국학자가 영문으로 쓴 중국기업법 개설서를 바이블처럼 참조했었다. 내가 그 책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그의 답변이 충격적이었다. 그는 그 책에 쓰인 것은 중국에서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 것, 즉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마디로 단언하였다. 요컨대 중국에는 서양에서 말하는 의미의 법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는데 이번에 그의 글을 읽으면서 학술논문이 요구하는 신중함의 포장 뒤에 숨어 있는 그의 평가는 지난 30년 사이에 별로 변화한 것이 없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는 매우 스마트하면서도 꾸밈이 없고 소탈한 성격의 천생 학자이다. 그는 말이 속사포처럼 빠르면서도 예리한데 이번 논문에서도 그의 특성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30년 전 시애틀로 향하는 비행기 속에서 그가 “chutzpa(h)”란 단어의 의미를 가르쳐준 일을 잊을 수 없다.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사전에는 뻔뻔함이나 대담함 등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그가 가르쳐준 바에 따르면 부모를 살해한 아들이 이제 자신이 고아가 되었으니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chutzpah”의 전형적 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