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책임에 대한 회사의 보상

이사의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부담하는 위험을 경감하는 방안 중 하나로 미국에서는 회사에 의한 보상(indemnification)이 널리 행해진다. 보상이란 일반적으로 이사 등 임원에 그 직무집행에 관해서 발생한 비용이나 손실을 회사가 사전 또는 사후에 부담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관한 논의도 별로 많지 않지만(그 예외로 최문희,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의 제한(2007) 50-87면) 회사의 보상이 어느 범위까지 가능한가에 관해서는 아직 상당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은 상당부분 이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가 별로 활발하지 않은 탓이라고 할 것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보상에 대해서 우리보다는 논의가 많았지만 그것이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2020년 회사법을 개정하면서 임원배상책임보험계약과 함께 보상계약에 관한 명문규정(제430조의2)을 도입하였다. 이에 관한 해설은 많지만 최근 경도대학의 스자키 히로시(洲崎博史)교수가 일본거래소가 후원하는 연구회에서 발표한 자료가 유익하다.(자료는 일본거래소홈페이지에 공개되어있다.) 스자키교수는 개인적으로 30년 전 뮌헨대학 Hopt교수 연구소에서 1년간 연구할 때 같은 연구소에서 친하게 지냈던 사이로 특히 보험법에 조예가 깊은 학자이다.

보상은 회사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더라도 이사와 회사사이의 위임관계에 기초하여 행할 수 있지만 일본은 법적안정성을 제고한다는 취지에서 명문의 규정을 둔 것이다. 새로 도입된 제430조의2는 보상계약의 체결절차, 이익충돌거래규제와의 관계 등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요지만을 간단히 소개한다,

보상계약의 대상은 크게 ➀변호사비용을 비롯한 각종 비용과 ➁손해배상이나 화해금 같은 손실로 나눌 수 있다. ➀비용에 대해서는 보상계약이 자유롭게 인정된다. 제3자의 청구에 대한 방어비용은 물론이고 회사의 청구에 대한 방어비용도 보상대상으로 포함시킬 수 있다. 또한 이사의 악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도 보상이 가능하다. 방어비용의 보상은 법문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소송에서의 승패와 무관하게 항상 가능하다고 볼 것이다. 다만 “통상 필요한 비용액을 넘는 부분”에 대해서는 보상할 수 없다(제430조의2 제2항 제1호).

➁손실의 보상에 관해서 우선 회사의 청구로 인한 손실의 경우에는 보상이 불가능하다. 그 경우에는 손해배상책임의 면제와 같은 결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제3자의 청구로 인한 손실의 경우에는 보상이 가능하지만 이사의 악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제430조의2 제2항 제3호). 그런데 실제로 제3자의 청구로 인한 손실에 대해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먼저 회사법상 이사의 제3자에 대한 책임은 이사의 악의 또는 중과실을 요건으로 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보상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렇다면 보상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이사가 일반불법행위에 의하여 제3자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경우이다. 스자키교수는 그 예로 회사 근로자가 산업재해를 당하는 경우를 들고 있다. 이사는 적절한 근로조건을 확보할 주의의무를 부담하지만 경과실만 있는 경우에는 근로자에 대해서 불법행위책임은 지지만 회사법상 제3자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산재의 경우에는 근로자에 대해서 이사는 물론이고 회사도 책임을 질 것이다. 이 경우 회사가 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경우에는 이사가 회사에 대해서 주의의무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이사가 회사에 대해서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될 경우에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보상이 허용되지 않는다(제430조의2 제2항 제2호). 그러므로 제3자의 청구로 인한 손실에 대해서 보상이 가능한 경우는 이사가 회사법상 제3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회사도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와 회사가 손해배상책임을 지지만 그와 관련해서 회사에 대한 이사의 책임이 한정되는 경우와 같이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 한한다고 본다.

이상과 같은 보상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이사회가 설치된 회사에서는 이사회의 승인, 그렇지 않은 회사에서는 주주총회의 승인을 요한다. 새로 도입된 제430조의2는 보상계약이 없는 경우에도 보상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민법상 위임규정에 따른 보상은 보상계약 없이도 가능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위임규정에 따른 보상은 이사의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회사법상의 보상계약에 의하지 않는 보상이 절대적으로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 항상 고려해야할 것은 그 거래에 대해서는 자기거래규제가 적용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손실의 보상과 관련해서는 제3자의 청구에 대해서 회사도 책임을 지고 또 이사도 다시 회사에 대해서 주의의무해태로 인한 책임을 지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그런 경우에 회사가 이사에게 보상을 해준다면 그것은 현실적으로 책임의 면제에 대한 규제를 잠탈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된다는 점에서 보상계약에 의하지 않는 보상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볼 것이다. 한편 방어비용의 보상에 관련해서는 책임면제의 잠탈은 문제될 여지가 없지만 자기거래규제는 여전히 문제될 수 있다. 이상의 문제점을 고려하면 이제 회사법에 보상계약을 체결할 길이 열려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무관한 보상을 추진할 실무상의 필요가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2020년 회사법개정에서 도입된 보상계약은 “이사 등에 대한 적절한 인센티브의 부여”라는 목표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라고 한다. 아직 이사의 책임을 묻는 메카니즘이 미흡하다는 인식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보상에 대한 관심은 고사하고 오히려 반감이 퍼져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소송을 비롯한 주주소송이 활발해지는 시점이 오면 이사에 대한 책임추궁과 보호수단의 적절한 균형이란 관점에서 이상적인 보상제도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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