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법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델라웨어주법의 우리 회사법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다른 점이 많지만 그 중 하나가 회사의 법령준수와 감시에 관한 법적 구성이다. 오늘은 그에 관한 논문 한편을 소개한다. Elizabeth Pollman, Corporate Oversight and Disobedience, 72 Vand. L. Rev. 2013 (2019) 저자는 이 블로그에서도 수차 소개한 바 있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연구가 활발한 중견학자 중 한명이다.
미국에서 신인의무는 주의의무(duty of care)와 충실의무(duty of loyalty)의 두 갈래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델라웨어주에서는 그밖에 성실의무(duty of good faith)라고 하는 개념이 사용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국내 학계에서도 이미 많이 알려져 있으므로 골자만 간추리자면 다음과 같다. 1985년 이사의 경영상의 결정에 대해서 중과실을 이유로 주의의무위반을 인정한 델라웨어주법원의 Smith v. Van Gorkom판결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 판결에 대처하기 위하여 주의회가 도입한 것이 바로 주의의무위반에 대한 이사의 책임을 면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주회사법 section 102(b)(7)였다. 이 규정을 근거로 회사들이 책임을 면제하는 정관규정을 채택함에 따라서 이제 이사들이 주의의무위반으로 책임을 질 위험은 사라지게 되었다. 예외적으로 이사의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는 이사의 사기, bad faith, 자기거래가 관련된 경우이다. 여기서 bad faith는 그 내용이 모호하지만 대표소송으로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주주가 section 102(b)(7)의 방패를 피할 수 있는 긴요한 수단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성실의무란 독자적인 개념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그 법적 지위는 다소 혼란을 겪은 후 현재는 충실의무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으로 일단락된 상태이다.
저자는 성실의무의 주된 내용으로 obedience와 oversight의 두 가지를 든다. 전자는 법령준수의무, 그리고 후자는 감시의무에 상응한다고 할 것이다. 우리 회사법학에서는 양자 모두 주의의무의 일부로 논의되고 있는데 반하여 미국에서는 충실의무의 일부로 논의하는 것이 앞서 설명한 특수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법령준수와 감시를 충실의무의 일부로 파악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법원이 그 위반을 이유로 이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논문은 크게 세 장으로 구성된다. 먼저 I장에서는 법령준수와 감시의 연혁과 개요를 설명한다. 저자는 법령준수의무의 연원을 과거 회사설립에 대한 정부의 특허에서 찾고, 나아가 감시의무에 관한 1996년의 Caremark판결에 영향을 준 요소로 회사내부의 compliance program을 설치한 경우 감형하는 연방양형지침을 든다. Caremark판결에서 당시 Allen판사는 이사의 적극적인 감시의무를 인정하면서도 “이사가 그런 상황을 방지하거나 시정하기 위한 성실한 노력(good faith effort)의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을 것”을 그 요건 중 하나로 제시하며 원고에게는 감시의무위반이 이사책임을 묻는 근거로는 아마도 가장 어려운 경우일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2006년의 Stone판결에 의하면 감시의무위반은 ➀이사들이 “보고 또는 정보 시스템 내지 통제장치”를 전혀 작동시키지 않았거나 ➁작동시켰더라도 그 결과를 참고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외면함으로써 위험을 인식하지 못한 경우에 인정할 수 있다. 법원은 결국 성실한 감시의무 이행을 “의식적으로 외면한”(conscious disregard) 경우에 비로소 이사의 책임을 인정한다고 판시하였다. 이런 법원의 엄격한 해석 때문에 실제로 감시의무위반으로 인한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국에서 대표소송을 제기하는 주주는 먼저 이사회에 제소를 청구할 필요가 있는데 그 청구가 무익함(futility)을 주장하는 경우에는 그 요건을 피할 수 있다. 무익함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과반수 이사들을 피고로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소장에 그들이 감시의무를 위반하였음을 구체적으로 기재하여야한다. 그리하여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감시의무위반소송이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여 trial에 이르지 못하고 각하되고 있다.
II장에서 저자는 이런 성실의무가 회사의 정당성(legitimacy)을 뒷받침하는 공적인 기능을 한다고 주장한다. III장에서는 I장에서 살펴본 판례를 토대로 법령준수의무와 감시의무의 관계를 법리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원고주주의 청구에 대한 각하신청이 기각되어 trial에 이른 예외적인 판례의 상황을 검토한 후에 법원이 사업상 위험(business risk)과 법적 위험(legal risk)을 구분하여 이사들이 후자를 의식적으로 무시한 경우에 주로 각하신청을 기각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법원이 Caremark판결의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은 성실의무의 공공적 기능에 비추어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위법에 대한 의도적인 관여를 요구하기 보다는 이사들이 자신들의 감시활동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였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한 경우에도 “의식적인 외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것을 주장한다.
참고: 최근 나온 델라웨어 법원의 Caremark관련 판결에 관한 정보는 Sidley로펌 사이트에서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