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비해서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는 뮤추얼펀드의 비중이 낮은 편이다. 오랜 동안 부동산이 중산층의 투자대상으로 선호되었던 탓도 있겠지만 간혹 시장의 활황이 찾아오는 경우에도 펀드를 통하지 않은 직접투자로 쏠리는 것을 보면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오늘은 펀드투자자보호를 위한 미국의 규제를 거시적으로 조망한 글을 한편 소개한다. Howell E. Jackson, A System of Fiduciary Protections for Mutual Funds (2020)(forthcoming in FIDUCIARY OBLIGATIONS IN BUSINESS (Arthur Laby & Jacob H. Russell, eds.)(Cambridge University Press).
저자는 Harvard Law School의 교수로 증권법, 금융규제법의 전문가이다. 나와 동년배로 40여 년 전 하바드 유학시절부터 낯익은 얼굴이었지만 정작 인사를 나눈 것은 한참 후에 서울에서 열린 학술행사에서였다. 그 후 우리 자본시장법 제정과 관련해서 KDI가 하와이에서 개최한 국제워크샵에서 만난 일도 있다. Fiduciary에 관한 단행본의 북챕터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fiduciary가 전면에 부각되고 있지만 복잡한 펀드규제의 주요 논점을 20페이지에도 못 미치는 지면에 압축적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미덕이라고 하겠다.
논문은 서론과 본론을 제외하면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장에서는 뮤추얼펀드 규제의 개요를 정리한다. 미국의 뮤추얼펀드규제는 1940넌의 투자회사법과 투자자문업자법은 물론이고 그 밖의 연방증권관련법과 자율규제와 같은 다양한 法源으로 구성된다. 저자는 규제의 주요내용으로 독립이사요건, 투자자문업자의 신인의무, 포트폴리오규제, 공시규제, 주주동의요건, 판매와 환매 시의 가격규제 등을 살펴본 후 그 저변에는 신인의무개념이 깔려있다고 주장한다. 펀드의 이사나 투자자문업자의 신인의무는 그 점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만 다른 요소들도 신인의무와 무관하게 법에 의해서 부과된 것이 아니라 그 연장선상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공시규제의 경우에도 신인의무의 내용에는 수익자에 대한 광범한 정보제공이 포함되어 있는데 펀드에 관한 폭넓은 공시규제는 신인의무에서의 정보제공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II장에서는 앞서 설명한 규제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용된 대표적 사례들을 살펴본다. 규제의 변용은 간혹 의회가 관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규제면제권을 부여받은 SEC가 담당하는데 저자는 SEC가 그 면제권을 행사한 대표적인 예로 펀드간 거래를 든다. SEC는 당초 엄격히 금지된 펀드간 거래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독립이사에게 펀드간 거래가 선을 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부여한다. 또한 저자는 그 밖의 규제완화의 예로 소프트달러사용, 하위자문업자(sub-advisor) 사용에 대한 주주승인의 면제 등을 들고 있다. 때로는 SEC가 업계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규제완화를 거부한 경우도 있다. 저자는 그 예로 업계가 내놓은 이사회폐지제안과 시가가 부존재하는 경우에 증권평가를 결정하는 이사회 권한을 경영진에 위양하자는 제안을 든다.
III장에서는 기능적으로는 뮤추얼펀드와 유사하지만 뮤추얼펀드 형태를 취하지 않기 때문에 뮤추얼펀드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새로운 집합투자형태가 제기하는 문제점에 대해서 고찰한다. 저자는 사모펀드와 보험상품을 제외하고 증권회사의 옴니버스 어카운트, 집합투자신탁, ERISA 펜션펀드 등이 제기하는 규제상의 쟁점에 대해서 설명한다. 이들 쟁점은 대부분 최근 미국 자본시장에서 불거진 것으로 기술적인 부분이 너무 압축적으로 설명되고 있어 이해하기 쉽지 않다.
IV장은 이런 변화에 따른 정책상의 고려에 대해서 논한다. 저자는 새로운 집합투자형태가 뮤추얼펀드규제의 적용을 피할 수 있는 것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공평한 경쟁의 차원에서 뮤추얼펀드규제도 완화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반면에 저자는 일반투자자의 자금이 뮤추얼펀드로부터 새로운 집합투자형태로 빠져나가는 경우에는 투자자보호 관점에서 우려할 측면이 있음을 인정하고 몇 가지 제안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