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와 주주총회 권한에 관한 사적자치

회사법과 사적자치는 회사법에서 근본적인 테마 중 하나이다. 사적자치는 여러 국면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과거에는 회사법은 기본적으로 강행규정이란 도그마가 지배하여 사적자치의 여지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으나 요즘은 반대로 “private ordering(사적 조정)”이란 표현이 늘상 등장하고 대체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와 관련해서는 나도 2019년 “이사회 업무집행에 관한 주주간계약”이란 글을 발표한 적이 있지만(2020.3.7.자 포스트) 우리나라에서는 그에 관한 심층적인 연구가 아직 풍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에서는 東北大 모리타(森田果)교수가 2000년대 초 동경대 학술지인 法学協会雑誌에 6차에 걸쳐 연재한 “株主間契約”이란 논문이 이 분야의 대표적인 연구라고 할 수 있고 국내에서도 널리 인용된 바 있다. 모리타교수는 일본 학자들 중에서도 실증적인 법경제학연구에 가장 경도된 학자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통계학지식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집필한 “실증분석입문”(2014)은 인기가 높다. 수년전 동경에서 개최된 어느 학술행사에서 발표를 마친 내게 그가 다가와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가 모리타교수라는 사실을 몰라서 그냥 짤막하게 답하고 헤어졌던 것이 아쉬울 뿐이다.

오늘은 위의 논제와 관련하여 그가 최근 발표한 논문 한편을 소개하기로 한다. 森田 果, 法定決議事項について第三者介在させる合意(田中 亘 & 森・濱田松本法律事務所 編, 会社・株主間契約の理論と実務 (2021)) 인터넷에서 그의 논문을 구할 수 없으니 결국 그 논문이 실린 책을 구입할 수밖에 없겠다. 그 책은 바로 지난 달 중순 발간되었는데 일본 회사법학계에서 가장 활발한 중견학자들과 모리・하마다라는 로펌 변호사들이 함께 참여하여 만든 것으로 주주간계약에 대한 최신 논의를 담고 있어 매우 유익하다.

논문의 제목은 “법정결의사항에 대해서 제3자를 개재시키는 합의”라는 추상적인 표현으로 되어있지만 “이사회와 주주총회의 권한에 관한 사적자치”라고 하는 편이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논문의 주된 테마를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이사회와 주주총회의 권한행사에 대한 제3자의 간섭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저자는 논문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II장에서 주주총회의 결의사항, III장에서 이사회의 결의사항, 그리고 IV장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로 주식발행에 사전승락을 구하는 합의와 계약상의 신주인수권에 대해서 고찰한다. 그런데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두텁게 보호하는 우리 상법의 관점에서 IV장은 적실성이 떨어지지만 II장과 III장은 우리 관점에서도 크게 참고가 된다. 다만 일본회사법은 주주총회의 경우 이사회 등 제3의 기관에 대한 권한위양을, 그리고 이사회의 경우 특정의 중요업무집행의 결정을 이사에 위임하는 것을 각각 법문에서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점(295조 3항, 362조 4항)이 우리 상법과 다르다.

II장과 III장은 각각 동일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각각 세 부분으로 나누어 먼저 위양내지 위임을 금지하는 조문에도 불구하고 사적자치에 의한 간섭을 인정할 여지가 있는지 여부를 검토하고, 이어서 정관에 의한 사적자치와 주주간계약에 의한 사적자치를 나누어 고찰한다. 그리고 사적자치에 의해 제3자가 간섭하는 방식도 권한위양, 사전승인, 사후승인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이 논문의 내용을 상세히 요약하는 것은 자제하기로 한다. 다만 논문에서 특히 내가 강조하고 싶은 대목을 옮겨 놓으면서 마치고자 한다.

“예컨대 江頭[각주생략-역자]는 기업매수시에 체결되는 이른바 록업계약에 대해서 주주총회 권한을 제약하는 내용의 계약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실질적으로 회사(주주)의 이익에 보탬이 되는 내용이 것인 한 회사와의 관계에서 유효성을 인정해도 좋다고 한다. 그 이유는 록업계약의 존재의의는 그것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기업매수자를 끌어내는 형태로 주주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찾는다. . . . 추성적으로 말하면 장래(사후 ex post)의 일정한 행동제약을 사전(ex ante)에 약속하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에 의해서 사전의 단계에서 당해 행동제약이 없었던 경우에 비해서 보다 효율적인 arrangement를 실현할 수 있는 기능성이 있다고 하는 동학(動學) 게임[dynamic game-역자]적 구조가 있는 경우에는 그와 같은 사후의 행동에 관한 약속이 사전의 효율성을 개선하고 당사자(이곳에서는 주주)의 (사전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시나리오가 성립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주주총회의 법정결의사항을 제3자에게 위양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같은 시나리오가 성립할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제3자에 권한을 위양하는 것이 의해서 비로소 당해 arrangement를 실현할 수 있고 그에 의해서 당사자(주주)에게 오히려 유리한 업무제휴・투자 등을 실현할 수 있는 것 같은 경우(그리고 그것을 당사자가 의식하여 행하고 있는 것 같은 경우)에는 그러한 권한위양(반대편에서 보면 권리포기)를 약속하는 것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한 합리성이 인정될 수 있다면 제3자에게 권한을 위양하는 것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주주의 이익실현・주주보호를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242-243면

비슷한 취지는 나도 앞서 언급한 논문에서 역설한 바 있기에 위 대목을 읽으며 반가웠다.

“원론적인 차원에서는 주주는 물론 이사에 의한 계약도 그것을 막을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그 취지가 실현될 수 있도록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계약의 내용이 이사가 장래 취할 행동에 관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권한의 제약이 아닌 권한의 행사란 관점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즉 장차 이사의 신인의무 이행을 방해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계약 체결이 바로 거시적 관점에서 신인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의 행위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석한다고 해서 이사가 신인의무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사의 행동은 이미 계약체결의 단계에서 신인의무의 구속을 받기 때문이다. 만약 계약체결 단계에서의 이사 행동이 회사와 주주이익에 부합하는 것이었다면 나중에 그 계약을 이행하는 것이 신인의무와 충돌한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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