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하여 사외이사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짐에 따라 그의 독립성에 대한 관심도 자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사의 독립성은 이사의 객관적인 직무수행을 담보하기 위한 개념이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국가에서는 소유관계, 가족관계, 고용관계, 사업관계 등의 구체적인 결격사유를 규정하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사외이사의 객관적인 직무수행을 위협하는 “관계”는 그밖에도 많다. 기업들은 법에 규정된 명목상의 독립성은 갖췄지만 실질적인 독립성은 결여한 사외이사를 구하려는 경향도 있다. 이런 경향은 특히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회사에서 강한데 오늘은 이에 관한 최근 논문을 한편 소개한다. Da Lin, Beyond Beholden, 44 J. Corp. L. 515 (2019). 저자는 Harvard 로스쿨 졸업 후 Richmond로스쿨에 재직하고 있는 젊은 교수이다.
이사의 실질적인 독립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통설은 신세를 진(beholden) “과거”의 경험에 주목하지만 저자는 아울러 앞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 즉 “장래”의 후원(patronage)의 가능성도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논문에서는 장래의 후원에 대한 기대가 이사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다. 저자는 명목상의 독립성을 갖춘 이사의 행동이 장차 지배주주로부터의 후원에 대한 기대로 인해서 어떠한 영향을 받는지를 실증적으로 살펴본다. 저자가 실증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2000년에서 2014년 사이의 축출거래에서 행해진 지배주주와 사외이사사이의 협상이다. 조사결과 저자는 사외이사가 지배주주의 후원을 기대하며 협조하는 관계가 일반의 예상보다 훨씬 더 널리 퍼져있다고 주장한다. 지배주주들은 협조적인 사외이사들을 자신들이 지배하는 다른 계열회사의 이사를 포함한 고위직에 재선임하는 사례가 많은데 자신의 샘플에서 36%의 지배주주들이 적어도 한명의 사외이사를 그렇게 재선임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의 관점에서는 지배주주에 대한 협조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상당히 크다는 것인데 아마도 그런 현상은 우리 현실에서 훨씬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짐작된다.
저자는 지배주주의 후원가능성이 다음 두 가지 요소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➀지배주주가 지배하는 기업집단의 규모와 ➁지배주주의 의사결정권한의 강도. 저자는 이처럼 지배주주를 구분하여 고찰하는 것은 이사의 독립성을 판단하거나 지배주주의 이익충돌행위에 대한 방어수단으로서의 독립이사의 효용을 판단하는데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제 미국 회사법학계의 주류적 논문에서도 지배주주의 존재는 과거에 비하여 훨씬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논문은 지배주주의 존재가 대리문제에 대한 대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외이사라고 하는 수단의 실효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문제야말로 아직 지배주주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큰 우리나라에서 더 절실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논문이 이제 미국 학계에서도 나오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