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거래의 규율을 위한 충돌금지원칙과 공정성원칙

자기거래의 규율은 어느 나라에서도 회사법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에 속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영미법이 대륙법에 비해서 한발 앞서 있다고 평가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정작 영국법과 미국법은 자기거래에 적용하는 원칙의 면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오늘은 두 나라의 자기거래의 법리와 실무에 관한 비교법적 연구를 한편 소개한다. Andrew F. Tuch, Reassessing Self-Dealing: Between No Conflict and Fairness, 88 Fordham Law Review 939 (2019) 이 논문은 지난 번 소개한 2020년도 회사법관련논문 베스트10에 선정된 것으로 저자는 St. Louis의 워싱턴대학 교수이다.

저자는 자기거래에 적용되는 대표적인 두 원칙으로 엄격한 “충돌금지원칙”(no-conflict rule)과 보다 융통성 있는 “공정성원칙”(fairness rule)을 대비한다. 전자는 영국이 따르고 있고 후자는 미국이 따르고 있다. 양자는 대조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그 차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두 원칙의 출발점은 다른 것이 사실이다. 충돌금지원칙은 공정성과 무관하게 자기거래를 금지하는데 반하여 공정성원칙은 그것이 공정한 경우에는 허용하기 때문에 일견 전자는 엄격하고 후자는 융통성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자는 다수의 예외를 허용한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영국에서는 회사가 자치적으로 예외를 설정할 수 있는데 비하여 미국에서는 자기거래의 위험성을 제거하는 정화장치가 존재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두 원칙 중 어느 쪽도 그 자체로 다른 쪽보다 더 엄격하거나 융통성 있는지를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두 원칙은 실제 운영 면에서 상당히 접근한다. 영국에서 회사는 예외를 정할 때 자기거래에 대해서 이해관계 없는 이사들의 승인을 얻도록 하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에서 원칙상으로는 공정성이 증명된 경우에는 자기거래가 허용되지만 실무상 공정성요건은 매우 엄격해서 저자의 관측에 따르면 현실적으로는 미국에서의 공정성원칙이 영국에서의 충돌금지원칙보다 오히려 더 엄격한 것 같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미국 법원이 거래를 승인하는 이사가 이해관계가 부존재할 뿐 아니라 독립성을 갖출 것을 요할 뿐 아니라 델라웨어주를 제외하고는 그런 승인이 있는 경우에도 거래조건이 불공정함을 원고가 증명하면 무효로 본다는 점을 든다. 그리하여 저자는 정책담당자나 학자들이 실제로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예외나 정화장치라고 주장한다.

전통적으로 미국에서 자기거래에 대해서는 초기에는 영국에서와 같이 충돌금지원칙을 적용했으나 차츰 자기거래의 유용성을 고려하여 보다 유연한 공정성원칙을 채택하게 되었다는 설명이 지배적이었다. 일부 학자는 이런 공정성원칙의 대두가 신탁법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견해를 표명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반면에 일부 학자들은 이를 신인의무법의 후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양자가 실제로 적용상 유사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과연 미국에서 충돌금지원칙에서 공정성원칙으로 전환된 것이 신인의무법의 완화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미국법상 큰 변화는 법원이 이해관계 없는 이사가 자기거래를 승인할 수 있음을 인정한 때 발생하였다고 본다.
논문은 서론과 본론을 제하면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장에서는 두 원칙과 그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본다. II장에서는 각 원칙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III장에서는 각 원칙의 실제 적용에 대해서 논한다. IV장에서는 신인의무법에 관한 기존의 통설적 견해와 관련하여 저자의 견해가 지닌 함의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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