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격: 회사와 주주사이의 半투과성 막

2010년 Hopt교수의 70세 기념논문집에 법인격과 회사손해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Kon Sik Kim, Corporate Legal Personality and Corporate Loss in Korean Law, Stefan Grundmann et.al. eds., Unternehmen, Markt und Verantwortung (De Gruyter, Festschrift für Klaus J. Hopt zum 70. Geburtstag am 24. August 2010 3115~3134)(박영사에서 출간한 영문논문집 Corporate Law and Governance(2020) 357-376) 그 논문에서는 우리 학설과 판례가 법인격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러한 “법인격 절대주의”(entity absolutism)가 1인회사, LBO, 주주에 대한 이사의 책임 등 여러 영역에서 비합리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당시 결론에서는 법인격의 도구적 성격(instrumental nature)을 강조하고 정책적으로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법인격을 유연하게 해석할 것을 주장하였다. 유감스럽게도 이 논문은 국내외에서 거의 아무런 반향도 얻지 못한 채 사라졌다. 오늘은 내 논문과는 다른 각도에서 법인격의 상대성을 부각시킨 최신 논문을 한편 소개한다. Mariana Pargendler, The Fallacy of Complete Corporate Separateness (2021). 저자는 국제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브라질 출신의 학자로 이 블로그에서도 이미 3차례나 논문을 소개한 바 있다. 이 논문은 특히 2020.5.27.자 포스트에서 소개한 Veil Peeking: The Corporation as a Nexus for Regulation, University of Pennsylvania Law Review, v. 169, 2021, p. 717-781를 토대로 하고 있다.

이 논문은 우선 전문이 미처 16페이지에도 미달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저자는 회사에 별도의(separate) 법인격을 인정함에 따른 결과에 관한 논의가 명쾌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음을 지적한다. 그는 이런 혼란이 별도성 개념의 다의성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즉 회사가 권리의무가 귀속되는 별개의(distinct) 주체라는 의미에서 별도성(separateness)을 갖는다는 점에는 의문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사가 법적으로 모든 맥락에서 주주로부터 격리된다는(insulated) 의미의 별도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별도성이 갖는 법적 효과에 관한 많은 논의는 그 점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법인격이 마치 절연체와 마찬가지로 회사와 주주(특히 지배주주)와의 사이를 단절시키는 것처럼 해석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법인격을 절연체가 아니라 半투과성 막(semi-permeable membrane)처럼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장에서는 회사의 별도성을 이유로 회사와 주주를 완전히 다른 존재로 파악하는 잘못된 시각이 표출된 여러 사례를 제시한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회사를 일부 논점과 관련해서는 주주로부터 격리된 것으로 파악하고 다른 논점과 관련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는 유연한 접근이 불가능하게 된다. II장에서는 법인격을 권리의무의 귀속점(point of imputation)으로 정의하고 회사와 주주의 격리가 상황에 따라 다른 형태를 취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자산격리와 규제상의 격리(regulatory partitioning)를 설명한다. 먼저 자산격리에 관해서는 그것이 조직격리, 유한책임, 자본유지(capital lock-in) 등의 요소로 구성되며 all-or-nothing이 아닌 다양한 수준으로 실현될 수 있고 법인격으로부터 유한책임이 논리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또한 유한책임이나 자본유지와 같은 강한 자산격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늘 효율적인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 한편 규제상 격리란 법의 적용에서 주주와 회사를 격리하는 것으로, 그것을 관철한다면 특히 지배주주와 회사를 다른 주체로 파악하는 경우 규제목적이 좌절될 우려가 있으므로 실제로 다양한 예외가 인정된다고 주장한다.

III장에서는 법인격의 별도성에 대한 예외를 다룬다. 자산격리와 관련해서는 법인격부인법리, 그리고 규제상 격리와 관련해서는 2020.5.27.자 포스트에서 소개한 veil peeking을 각각 언급한다. veil peeking에 관해서는 입법으로 실현되는 경우와 법인격부인법리와 같이 법원이 채택하는 경우를 살펴본다. IV장에서는 법인격이 제공하는 법적 격리의 정도는 논리적으로 연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인 선택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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