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생절차와 계약의 역할

오늘은 모처럼 도산법 분야의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David A. Skeel, Taking Stock of Chapter 11, Syracuse Law Review, 2021 Forthcoming. 저자는 UPenn로스쿨의 도산법교수로 종종 회사법에 관한 논문도 발표하는 저명한 학자이다. 논문은 American Bankruptcy Institute라는 도산법전문가 단체에서 오래동안 사무총장(executive director)으로 일한 Sam Gerdano라는 실무가를 기념하는 특집에 기고한 것이지만 도산법의 기본이론을 논하고 있다. 이 논문은 본문이 double space로 33면에 지나지 않은데 상당 부분이 과거 그가 Triantis교수와 공저한 논문(David A. Skeel, Jr. & George Triantis, Bankruptcy’s Uneasy Shift to a Contract Paradigm, 166 U. PA. L. REV. 1777(2018))을 인용하고 있으므로 보다 깊은 관심이 있는 독자는 그 논문을 참조할 것을 권한다.

저자는 도산법분야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Thomas Jackson교수가 1982년 논문에서 제시한 채권자합의이론(Creditors’ Bargain Theory)을 설명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부실기업의 채권자들이 다수인 경우 각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다보면 실제로 회생이 가능한 기업도 해체됨으로써 모두가 손실을 입을 수 있다. 만약 이들 채권자들이 타협할 수 있다면 모두에게 불리한 이런 사태는 피할 수 있을 것이지만 집단행동의 문제(collective action problem) 때문에 그러한 이상적인 해결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채권자합의이론에 따르면 도산법은 채권자들이 가상적으로 합의하였을 내용으로 구성해야 한다. 따라서 도산법은 당연히 강행법적 성격을 갖는다. Jackson은 시카고대학의 Baird교수와 공저한 일련의 논문에서 이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고 특히 1986년 출간한 단행본(THE LOGIC AND LIMITS OF BANKRUPTCY LAW)은 이 이론이 주류적 견해로 자리잡는데 기여했다.

논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I장에서는 채권자합의이론에 대한 비판을 소개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새로운 계약적 관점을 주장한다. II장에서는 자신의 관점에 입각하여 두 가지의 계약적 쟁점, 즉 DIP금융채권자를 비롯한 우선채권자의 문제와 경영자에 대한 보너스의 문제를 검토한다. 이곳에서는 I장에 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기로 한다.

채권자합의이론에 따르면 도산법은 채권자들이 가상적으로 합의하였을 내용으로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강행법적 성격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분산된 다수의 채권자들의 조정비용은 Jackson이 상정한 것처럼 심각하지 않아서 실제로는 당사자들 사이에 합의가 많이 체결되었다. 이런 실제의 상황변화는 채권자합의이론의 토대를 흔드는 것이었고 그에 따라 그 이론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생겨났다. 저자는 채권자합의이론에 대한 비판이 도산이라는 부실처리의 집단적 절차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채권자합의이론의 근본적인 설득력을 훼손하지는 않는다고 변호한다. 그렇다고 해서 채권자합의이론이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채권자합의이론은 회생절차의 성공에 필수적인 요소인 유동성의 확보나 지배구조의 문제를 경시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비판한다.

당사자들 사이에 체결된 계약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존재한다. 그리하여 이제는 이러한 당사자들 사이의 사적자치를 어느 범위에서 허용할 것인지가 도산법의 과제로 등장하였는데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새로운 계약패러다임(new contract paradigm)으로 부르고 그 개요를 제시한다. 저자는 이들 계약을 사전적 계약과 사후적 계약으로 구분하고 양자의 장단점을 설명한 후 법원이 전자에 대해서는 후자에 비하여 훨씬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전자의 예로 채권자사이에 순위를 정하는 계약을, 그리고 후자의 예로 지난 번(2020.7.14.자 포스트)에서 소개한 바 있는 Restructuring Support Agreement를 검토한다.

Jackson이 1986년 출간한 “도산법의 논리와 한계”는 교수초년병 시절 거창한 책 제목에 끌려 구입했다가 큰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그의 견해는 너무도 설득력 있게 보였는데 그렇게 비판을 받는 것을 보니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회사법연구자라면 기업의 비정상상태를 의미하는 기업도산도 알아둬야 한다는 의무감은 늘 있었지만 솔직히 별로 공부하진 못했다. 오늘 살펴본 도산절차에서의 사적자치의 역할과 그에 대한 평가의 문제는 회사법에서의 사적자치의 문제와 관련해서도 음미할 대목이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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