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권의 행사를 제약하는 계약의 효력

며칠 전 4년 만에 동경을 방문했다. 모처럼의 기회라 오래 만나지 못했던 에가시라(江頭憲治郞)교수에게 미리 연락을 했다. 70대 후반인 그가 호텔까지 마중을 나와 줘서 몹시 부담스러웠다. 그가 새로 꾸민 연구실도 구경하고 그가 최근 발표한 논문의 별쇄본도 건네받았다. 그런데 주변에 있는 호텔 꼭대기에 있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까지 대접받고 호텔로 돌아오는 도중 어딘가에서 어이없게도 그 논문을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한편으론 그런 당혹스런 사정을 그가 알 도리가 없으니 잠자코 그냥 넘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흘깃 스쳐본 표지의 제목이 마음에 걸렸다. 江頭憲治郞, 共益権の行使を制約する契約の効力, 早稲田大学法学会百周年記念論文集 第2巻 民事法編(2022) 207면. 이 블로그에서도 이미 수차 다룬 바 있기 때문에 주주간계약에 대한 내 관심은 독자들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논문집을 산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기 때문에 뻔뻔함을 무릅쓰고 이메일을 보냈다. 친절하게도 그는 자기도 요즘 소지품을 자주 잃어버린다는 말로 내 면구함을 덜어주며 pdf파일을 보내왔다. 오늘은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곁들여 그 논문을 소개하기로 한다.

20면 남짓으로 짤막한 이 논문은 주주권에 대한 사적자치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포괄적”이라는 평가는 다음 두 가지를 근거로 한다. ①주주권을 크게 감독시정권과 경영참여권으로 나누어 모두 검토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의결권과 같은 경영참여권의 제한에 대한 논의는 없지 않지만 감독시정권의 제한에 대한 연구는 별로 없다는 점에서 특히 관심을 끌었다. ②사적자치의 수단으로 주로 계약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정관에 의한 제한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또한 계약의 경우에도 주주간계약 뿐 아니라 주주와 회사간 계약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하에서는 논문의 순서에 따라 감독시정권과 경영참여권을 나누어 저자의 견해를 소개한다.

회사법상의 각종의 소권을 비롯한 감독시정권에 대해서 저자는 그것을 제약하는 정관규정을 둘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을 제약하는 주주간의 계약도 무효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감독시정권규정의 강행법규성을 인정하는 근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감독시정권을 제약하는 정관조항을 두는 것이 인정되지 않는 (감독시정권에 관한 종류주식은 존재하지 않고 감독시정권에 관한 속인적 정함이 인정되지 않는) 이유는 그것에 속하는 소권의 행사에 의한 소송의 청구인용판결에는 대세효가 인정된다(회사법 838조)는 등의 점에서 주주전체의 이익에 극히 중요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행사하는 의사와 능력을 가진 주주가 극히 한정된다는 (행사에 요하는 비용부담이 크고 당해 소송에 관한 청구원인사실을 알 수 있는 자의 범위가 좁다는 등) 점에서 정관자치를 인정하면 본래 기대되는 권리행사가 행해지지 않는 사태가 용이하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할 우려는 감독시정권의 행사를 제약하는 주주간 계약을 유효로 인정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감독시정권규정은 그 행사를 제약하는 주주간계약도 무효로 하는 강행법규라고 해석해야한다.”

보다 새로운 것은 경영참여권에 대한 저자의 견해이다. 저자가 특히 주목한 대상은 의결권구속계약인데 저자는 이를 ①임원의 선해임에 관한 계약과 ②그 외의 계약으로 나누어 검토한다. 둘 중 더 중요할 뿐 아니라 이론상으로도 더 재미있는 것은 ①이므로 이하에서는 ①만을 소개하기로 한다. 저자는 먼저 이제까지의 학설, 판례를 정리하면서 최근의 추세는 주주간계약의 채권적 효력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 이행강제까지 인정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밝힌다. 특히 주주전원이 당사자가 된 경우에는 이행강제를 인정하는 견해가 유력할 뿐 아니라 그런 취지의 판례가 나오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종래 주주간계약의 채권적 효력을 인정하면서도 이행강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다수설을 지지해왔으나 이 논문을 계기로 견해를 변경하였음을 선언한다.

저자는 그러한 결론을 뒷받침하는 기본적인 인식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①의결권구속계약의 효력은 계약당사자의 의사 등에 의하여 천차만별일 수 있다. ②의결권구속계약은 그것만 고립하여 체결되는 경우는 드물고 계약당사자사이의 보다 폭넓은 법률관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은 경우가 보통이다. 따라서 당해 계약의 효력여하는 그것을 포섭하는 폭넓은 법률관계를 무시하고 논할 수는 없다. 저자는 이러한 기본적 인식을 전제로 임원의 선해임에 관한 의결권구속계약을 검토한다.

그는 그 계약을 포섭하는 “폭넓은 법률관계”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①準위임계약형; ②중소기업경영자간의 조합계약형, ③기업간의 조합계약형, ④주주와 회사(이사회) 사이의 계약형. ①의 예로는 대주주가 경영자에게 지위를 보장하기 위하여 체결하는 계약을 든다. 그는 준위임은 당사자사이의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에 신뢰를 상실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해제할 수 있고 그 경우에는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②의 예는 중소기업에서 동업적 관계가 있는 주주들 사이에 체결되는 조합계약이다. 저자는 존속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에는 언제든지 탈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민법 678조1항) 손해배상책임조차 인정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존속기간이 정해진 경우에는 “부득이한 사유”를 증명하지 못하면 탈퇴가 불가능하므로 이행강제가 가능하다는 논리도 성립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저자는 조합원사이에 신뢰가 상실된 경우에는 탈퇴를 인정하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이유로 그 경우에도 이행강제 대신 손해배상으로 처리할 것을 주장한다.

③의 대표적인 예는 조인트벤처에서의 계약으로 그 경우에는 존속기간이 한정된 경우가 많다. 저자는 그런 경우에는 중소기업경영자 사이의 계약과는 달리 그것을 즉시 해소할 필요성이 그렇게 크지 않으므로 원칙적으로 탈퇴를 허용하지 않는 일본민법의 규제에 따라 이행강제를 허용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저자는 이행강제의 허용여부를 주주전원이 참여하였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의 유력설과는 차이가 있다.

④의 경우의 계약은 무효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다만 자본업무제휴관계에 있는 주주가 지명하는 소수의 임원후보자를 선임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주주가 이사회가 제출한 임원선임의안에 찬성하기로 하는 의결권구속계약의 경우에는 주주도 자기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무효로 볼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현경영진에 반대하는 제3의 주주가 있는 상황에서는 그런 계약의 유효를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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