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은행규제에 관한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Lev Menand & Morgan Ricks, Rebuilding Banking Law: Banks as Public Utilities, Yale Journal on Regulation, Forthcoming(2023) 저자들은 각각 콜럼비아 로스쿨과 밴더빌트 로스쿨에서 은행법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Ricks교수는 수년 전 강연을 위해 밴더빌트에 방문했을 때 만나 만찬을 같이 한 일이 있다. 당시에는 학계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소장학자였는데 이젠 완전히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 논문은 미국의 기존 은행규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방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거창하고도 야심적이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된 규제완화를 상당 부분 뒤엎는 개혁이라는 점에서 황당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논의를 통해서 미국 은행규제의 역사와 주요 논점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외국의 독자에게는 유익하다. 저자들은 은행의 핵심기능을 통화의 창출로 보고 그러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은행은 전기, 수도 등의 공공사업(public utilities)과 같이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1864년 국립은행법(the National Bank Act)에서 출발하여 1913년 연방준비제도법과 1933년 은행법을 거치면서 골격이 완성된 미국의 은행규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통화공급을 사기업인 은행에 맡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임을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은행과 증권의 분리를 포함한 은산분리, 영업지역제한, 은행감독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이 추가되었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과거의 은행규제는 공공사업규제와 유사한 점이 많았는데 1980년 이후의 규제완화로 인하여 2008년의 금융위기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금융위기를 초래한 핵심원인을 은행이 아니면서 실질적으로 통화공급기능을 하는 쉐도우 뱅킹의 확대에서 찾는다. 2010년대에 규제강화가 추진되었지만 쉐도우 뱅킹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Sillicon Valley Bank나 First Republic Bank 등의 실패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현행 은행규제를 획기적으로 개혁하여 과거의 공공사업규제의 체제로 돌아가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 이른바 신국립은행(New National Banking)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한 논문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장에서는 신국립은행 시스템의 내용을 서술한다. II장에서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III장에서는 시스템 구축의 추진방안을 제시한다. I장에 따르면 새 시스템에서 회원은행은 연방법에 의해서 설립되고 “은행통화”(bank money)라는 부채만을 부담할 수 있다. 은행통화는 예금이나 현금등가물 등으로 좁게 정의된다. 중요한 것은 회원은행이 아니면 은행통화의 창출이 금지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은행통화의 총량은 물론이고 은행통화에 대해서 지급하는 금리도 정부가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I장에서는 그밖에 자본규제, 통합된 감독기관에 의한 감독, 지분제한, 은산분리, 규모제한 등 다른 사항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II장에서는 현재의 규제시스템이 갖는 문제점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든다 – 금융위기의 빈발, 도산시킬 수 없는 대규모금융기관의 증가, 통화량통제의 상실, “빈익빈 부익부”식의 배분, 자산가격의 폭등, 경제의 금융화, 민주주의의 훼손. 저자들은 I장에서 서술한 신국립은행 시스템을 도입하면 이런 문제들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III장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하여 법적으로 취해야할 개혁조치의 개요를 제시한다. 특히 개혁조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항인 非은행에게 금지되는 “허용되지 않는 은행업무”(unauthorized banking)에 대해서는 따로 상세히 검토할 뿐 아니라 부록으로 자신들이 마련한 규정안까지 첨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