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법을 공부할 때 알쏭달쏭한 개념을 많이 접하게 되지만 그 중의 하나가 bad faith이다. 우리 말로는 흔히 “악의”라고 번역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 정확한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다. 문제는 bad faith가 다양한 맥락에서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찜찜함을 떨치기 어렵다. 오늘은 이 개념의 이론적 구조를 본격적으로 탐구한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Robert J. Rhee, A Theory of Corporate Bad Faith: The Legal Topology of Public and Private Bad Faith (2026). (저자의 소개에 관해서는 2022.10.8.자 참조)
저자는 델라웨어 회사법상 bad faith는 주의의무와 전통적 충실의무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 형평법상의 법원칙으로 파악한다. 그에 따르면 bad faith는 양대 의무 사이의 중간영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의 해결에 동원되는 법리지만 그것이 적용되는 경우는 다음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①의도적 부당행위(intentional misconduct), ②고의적 법위반, ③Caremark형 감독실패, ④회사의 낭비(corporate waste). 이들 유형의 주관적 구성요건은 상이하지만 저자는 그 최소한의 요건을 “당해 행위의 부당성에 대한 인식”(knowledge of the wrongful nature of the conduct)이라고 주장한다.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장에서는 델라웨어의 bad faith법리를 개관한다. 위에서 ①, ②, ③은 오래전부터 bad faith의 문제로 다뤄졌으나 최근에는 ④의 회사의 낭비도 그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II장에서는 회사의 낭비를 bad faith에 속한다고 보는 이이론적 근거를 제시한다.
III장에서는 다양한 유형이 포함된 bad faith법리를 단일한 이론으로 구성한다. 먼저 bad faith는 주의의무와 충실의무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부당행위 유형을 포섭하기 위하여 개발된 법리이다. 문제는 bad faith라는 명칭이 주관적 요건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bad faith법리가 적용되는 각 유형에서 요구되는 주관적 요건(scienter)이 각양각색이어서 혼란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저자는 최소한의 주관적 요건을 “당해 행위의 부당성에 대한 인식”으로 본다. 이어서 저자는 위 네 가지 유형 중 ①의 의도적 부당행위를 상위의 원칙으로 이른바 catch-all rule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고, ②, ③, ④는 그 하위의 보다 구체적 원칙으로 본다. 그리고 보호하는 이익을 기준으로 bad faith를 private bad faith와 public bad faith로 구분한다. 전자는 영리기업으로서의 회사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는 것으로 ④의 회사의 낭비가 그에 속한다. 후자는 법을 준수하는 존재로서의 회사가 갖는 비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는 것으로 ②와 ③이 그에 속한다.
IV장에서는 이러한 bad faith이론이 지닌 함의를 3가지로 나누어 살펴본다. ①저자에 따르면 Caremark의무는 공적인 감독의 위반에 관한 것이므로 공적 규제의 준수가 아니라 사적 이익을 위한 감독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문제될 수 없다. ②따라서 사적 이익을 위한 감독을 소홀히 한 경우에는 회사의 낭비나 catch-all rule인 의도적 부당행위, 즉 주관적 bad faith의 법리를 적용해야 한다. ③Caremark의무는 공적 규제의 준수에 관한 것이므로 규제범위가 사회적책임에 관한 사항에까지 확대되면 Caremark의무의 범위도 사회적책임의 준수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