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제컨퍼런스에 가보면 법학교수들의 발표에서도 사건연구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사건연구의 적용범위는 실로 광범하지만 증권시장에서의 허위공시에 관한 연구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법원에서도 허위공시나 불공정거래가 관련된 증권소송에서 사건연구가 흔히 등장하고 있다. 실제 소송에서 사건연구는 재무관리 전공의 경영학교수에게 의뢰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법률가들도 기본적인 사항 정도는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건연구는 경제, 경영학을 비롯한 사회과학분야에서는 이미 정착된 연구방법이므로 그에 관한 문헌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소송에서의 활용에 관심이 있는 법률가를 위한 문헌은 많지 않다. 일본 문헌으로는 東北大 상법담당인 모리타 하츠루(森田果)교수가 2014년 출간한 実証分析入門이란 책에 포함된 사건연구에 대한 기본적인 해설이 유용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법률논문에 아주 간단한 내용이 언급된 것을 보았으나 과문한 탓인지 그 이상의 문헌은 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U. Penn의 Jill Fisch교수가 적어도 제목으로는 나의 수요에 딱 들어맞는 논문을 발표한 것을 알게 되어 반가웠다. Jill E. Fisch, Jonah B. Gelbach & Jonathan Klick. The Logic and Limits of Event Studies in Securities Fraud Litigation. 96 Tex. L. Rev. 553-618 (2018). 더구나 이 논문은 Thompson교수가 주관하는 2018년 회사법, 자본시장법 논문 Top 10에도 선정되었으니 나의 기대는 한층 높아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내 기대는 곧 무너졌다. 우선 이 논문이 66페이지로 너무 길 뿐 아니라 수준도 높아서 나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어차피 이 나이에 사건연구의 전문가가 될 것도 아닌데 이 논문은 독자에게 너무 많은 준비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Fisch교수의 새 논문을 접하였다. Jill E. Fisch & Jonah B. Gelbach, Power and Statistical Significance in Securities Fraud Litigation, 11 Harv. Bus. L. J. (Forthcoming 2021)이 그것이다. 제목에는 사건연구란 말은 나오지 않지만 역시 그에 관한 논문이다. 이 논문도 만만찮게 길지만(63페이지) 앞의 논문보다는 덜 어렵고 주된 논지도 단순하다. 즉 신뢰수준(confidence level)의 선택은 정책적 선택의 문제이므로 일반 사회과학연구에서처럼 항상 95%를 고수할 필요는 없고 상황에 따라 더 낮은 수준을 택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저자들은 앞 부분에서 사건연구의 개요를 설명하고 사건연구에서 신뢰수준과 설명력 사이의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상세히 설명한다. 예컨대 특정허위공시와 가격변화 사이의 인과관계를 판단하는데 신뢰수준을 높이면 실제로 인과관계 없음에도 인과관계가 있다는 결과가 나올 위험(이른바 Type I error)은 줄일 수 있지만 거꾸로 실제로 인과관계가 있음에도 인과관계가 없다는 결과가 나올 위험(이른바 Type II error)이 커진다는 점을 잘 설명하고 있다. 물론 더 많이 알면 좋겠지만 특별히 전문가가 될 야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선 이 앞 부분 정도만이라도 제대로 읽어보면 실제 사건연구가 활용되는 모습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