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엽(베이징 대학교 국제법학원 교수)
지배구조 (Corporate Governance) 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연구 중 하나는 아마도 1998년 Journal of Political Economy에 발표된 Law and Finance가 아닐까 한다. 이 논문은 네 명의 저자들 (Rafael LaPorta, Florencio Lopez-de-Silanes, Andrei Shleifer, and Robert W Vishny, 이하 LLSV 로 통칭함)의 공동 저작물인데, 이들 모두 저명한 경제학자들이다. 특히 Harvard 대학에 재직 중인 Shleifer 교수의 경우, 경제학계 최고권위 상들 중 하나인 John Bates Clark Medal을 1999년에 수상하기도 하였다. 구글에 따르면 2020년 4월 말 현재, Law and Finance 논문의 피인용횟수는 22271 회에 이르고 있으니, 이 논문의 학술적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20세기 Corporate Governance 연구는 재무금융학, 경제학, 그리고 법학에서 비교적 독립적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20세기 말 이후에는 이들 학문분야에서 융합된 형태의 Corporate Governance 연구가 심화되고 발전되어 왔다. 그 중요한 계기는 아마도 Law and Finance의 출판일 것이다. 이 논문은 발간된 지 20여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회사법 학계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비교 지배구조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가장 중요한 연구성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근래에는 이 논문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기류도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Law and Finance 발간 이후에도 LLSV는 여러 편의 관련 후속 논문들을 공동 저술하였다.
Law and Finance에서 LLSV는 49개 국가 혹은 관활권역 (Jurisdiction)의 회사법을 조사하여 회사법이 투자자보호에 미치는 영향을 통계적으로 분석하였다. 이 논문에서 회사법 학자들의 관심을 특히 끄는 부분은 6개의 Antidirector Rights 라는 개념일 것이다. 이는 사실상 “소수주주들의 권리” 라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인데, LLSV는 이 6가지의 소수주주 권리에 대하여 49개 조사 대상의 Antidirector Rights 채점표 (Scoreboard)를 만들어서 각각의 소수주주 권리가 발견되는 대로 1점씩 부여하였다 (각각의 소수주주 권리가 조사대상국의 회사법상 존재하지 않으면 0점 부여). 그 결과, 각 국가 혹은 관할권역의 Antidirector Rights의 최종점수는 0점에서 6점 사이에서 결정된다. 이 최종점수는 그 국가 혹은 관할권역의 투자자보호 정도를 계량적으로 측정한 것으로 이해된다. 참고로 미국의 점수는 5점이었다.
Antidirector Rights 와 관련하여 학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아마도, LLSV 가 49개 국가 혹은 관할권역을 영미 보통법계, 독일 대륙법계, 프랑스 대륙법계,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대륙법계의 4개 그룹으로 나누어, 각 그룹간 투자자보호의 정도를 통계적으로 보여준 것일 것이다. LLSV에 따르면, 영미 보통법 체제에 속하는 국가 및 관할권역들의 Antidirector Rights 점수는 평균 4점이며, 이는 프랑스 대륙법 체제의 평균점수 2.33 점에 비하여,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에서 높다고 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여러 나라 학자와 정책 실무자에게 다양한 함의를 던져주었다. 이 중 하나는, 대륙법 국가들이 영미 보통법계의 투자자 보호 체계와 회사법 (그리고 나아가서 자본시장법) 체제를 따르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투자자보호를 강화하고 회사의 지배구조와 자본시장을 발전시키는 방향이라는 정책제안들이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다양한 비판이 뒤따르기도 하였다. 그 중요한 비판 논점 중 하나는 LLSV의 연구는 단지 상관관계 (Correlation)를 제시하고 있을 뿐 인과관계(Causation)를 보여주지는 않았다는 반론이다. 특히, 현재 Michigan 법대 학장을 맡고 있는 Mark West 교수는 각 국의 축구실력 (FIFA 랭킹)과 그 국가가 채택한 법계와의 관계 연구를 통하여 Law and Finance가 던지는 함의를 비판하였다. 즉, West 교수는 Legal Determinants of World Cup Success 라는 짧은 연구 논문에서, 만약 LLSV의 Law and Finance 논리를 똑같이 적용한다면, 브라질,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등 국가들의 축구실력이 다른 나라보다 전반적으로 높고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이유는 이들 국가들이 프랑스 대륙법계를 따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설명을 하였다. 이 설명을 뒤집어서 말하자면, Law and Finance 주장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힐 수 있다. 즉, 각 국의 축구실력과 각 국이 채택한 법계와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 인과관계가 희박한 것과 마찬가지로, 대륙법계에서 영미 보통법 체제나 제도를 따르는 것이 반드시 강화된 투자자보호라는 형태의 인과관계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Harvard 법대의 Holger Spamann 교수는 The Antidirector Rights Revisited 라는 논문에서 Law and Finance에서 작성된 각국의 Antidirector Rights가 잘못된 조사를 통해 계량화 되었다고 지적하였다. 필자 역시 Taking Voting Leverage and Anti-Director Rights More Seriously: A Critical Analysis of the Law and Finance Theory라는 논문에서 Law and Finance 이론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하고 비판하였다.
여러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Law and Finance가 Corporate Governance에 있어 학제간 융합에 큰 공헌을 하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회사법의 세부 항목을 방대한 자료와 계량경제적 방법을 통해 국제비교를 행한 연구는 Law and Finance 이전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Law and Finance는 Corporate Governance 분야에서 선구적 이정표를 세운, 손에 꼽히는 연구성과 중 하나로 기록될 자격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