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신인의무 – 비교법적으로 본 그 윤곽의 변화

오래 동안 Sydney대에 재직하다 최근 Monash대로 전직한 Jennifer Hill교수는 호주를 대표하는 회사법학자로 국제학계에서도 활동이 많은 분이다. 지난 1월 갑작스런 초대를 받아 3주간 Monash대학이 있는 Melbourne에서 같이 정원도 방문하고 영화도 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당시 호주 전역은 들불로 어수선했으나 코로나사태가 번지기 전이어서 그런대로 지낼 만 했다. 어느 날 Hill교수가 지나가는 말로 어제 밤 논문 하나를 마무리했다고 한 적이 있다. 오늘은 Hill교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바로 그 논문을 소개하기로 한다. 제목은 Shifting Contours of Directors’ Fiduciary Duties and Norms in Comparative Corporate Governance으로 ➀신인의무의 내용이 같은 영미법계 국가들 간에도 어떻게 다르고 또 ➁모범규준과 같은 soft law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조망한 유익한 글이다. ➁도 흥미롭지만 내 관심을 더 끄는 것은 ➀이다.

➀은 2장과 3장에서 고찰하고 있다. 2장에서는 신인의무의 역사적인 발전을 간단히 살펴본다. 3장에서는 영미법국가와 대륙법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법적인 주주보호정도의 차이와 주식소유 분산도의 차이를 연결시키는 일부 재무관리학자들의 유명한 연구를 신인의무의 측면에서 비판한다. 즉 신인의무 개념은 영미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륙법계 국가에도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제도가 존재하며 영미법계국가의 회사법도 실제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영국과 미국의 회사법은 출발점부터 다르다고 지적한다. 영국에서 회사법은 순전히 사적조직인 비법인 joint stock company에서 유래한 것인데 비해서 미국의 회사법은 공적 성격이 강한 영국의 왕실특허회사였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차이는 이사의 재량범위나 신인의무의 역할에도 다음과 같은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➀미국에서는 주의의무(duty of care)도 신인의무에 포함되지만 영국에서는 이익충돌과 관련된 의무만 포함되는 것으로 좁게 보는 차이가 생겨났다. ➁미국에서와는 달리 영국이나 호주에서는 “entire fairness” 같은 개념은 없고 법원이 이사행위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➂영국과 호주에서는 이익충돌거래를 “소독”하는 역할은 독립이사가 아니라 주주들이 맡는다. ➃델라웨어주에서 신인의무는 순전히 형평법상 인정되는 것이지만 영국과 호주에서는 제정법상 의무도 포함한다. 그 예로 주주이익과 아울러 이해관계자 이익을 고려할 것을 요구하는 영국 회사법 제172조 제1항을 들고 있다. ➄미국에서는 경영판단원칙과 이사책임면제입법을 통해서 주의의무에 대한 책임이 크게 완화되고 있는데 비하여 영국과 호주에서는 훨씬 더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영국에는 경영판단원칙이 없고 호주에서는 제정법상 경영판단원칙이 규정되어있지만 법원이 좁게 해석하고 있다. ➅법집행과 관련해서는 더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은 사적 소송에 의존하지만 영국에서는 그런 소송이 거의 없다. 한편 호주에서는 공적규제기관이 소를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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