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에서의 고급회사법 강의

이 블로그에서 자주 소개하는 Bainbridge교수의 블로그 7.14자에서는 자신이 Advanced Corporate Law라는 제목의 casebook을 가을에 출간할 예정이란 소식을 전하고 있다. “advanced”란 수식어에 끌려 읽어보니 내용은 주로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것을 담는다고 한다. 나도 퇴직전 로스쿨에서 회사법과 기업지배구조론의 강의를 맡았지만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내용이 “고급회사법”이란 타이틀을 독점하는 현상에는 의문이 없지 않다.

서울대에서는 회사법은 필수과목도 아닐 뿐 아니라 3학점에 불과하다. 회사법을 6학점으로 하는 로스쿨도 있지만 3학점으로 하는 로스쿨이 주류라고 알고 있다. 사실 주당 3시간 강의를 13회 정도 하는 것으로 나날이 새롭게 등장하는 회사법 이슈를 커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래도 주마간산식 강의에 흐르기 십상이다 보니 우리도 “고급회사법”에 상응하는 과목을 개설해야하는 것 아닌가하는 논의를 해보기도 했다. 일본의 로스쿨에서 상급상법이란 명칭의 강의가 개설되고 교재도 출간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사정이 있어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서울대 로스쿨에서는 고급회사법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으로는 ➀기업지배구조론, ➁기업재무, ➂기업인수합병의 셋 정도가 있다. ➀은 로스쿨 초기부터 퇴직 전까지 내가 1~2년에 한 번 개설했었고 ➁는 박준교수가 거의 매년 개설한 것으로 알고 있다. 로스쿨 도입 전에는 학부에 회사법특강이란 과목이 있어서 1987년부터 매년 내가 담당했다. 초기에는 회계와 재무를 주로 다루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회계 쪽 비중이 줄어들고 대신 M&A에 관한 부분이 늘어났다. 박교수의 강의는 주식과 사채의 거래라는 기업재무에 집중하여 로펌실무에 적합성이 높은 강의로 정평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➂이야말로 고급회사법이란 명칭에 부합하는 고도로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우호적 기업인수는 계약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고급계약법”적인 성격도 겸하고 있다.

현재 나와 박교수가 퇴직하였고 다른 상법교수들은 보직을 맡는 등의 사유로 기본 상법강의 외에 이런 고급회사법의 강의를 지속적으로 개설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고급회사법 과목에는 위와 같은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외국의 일류 로스쿨에서 개설되는 과목으로 특히 언급하고 싶은 것은 다음 두 가지이다: ➃폐쇄회사법과 ➄business planning. ➃의 폐쇄회사는 실제로 회사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주식회사 이외의 사업형태는 많이 이용되지 않으므로 기타의 회사형태를 본격적으로 강의하는 것은 다소 이른 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합작투자회사, private equity 투자, 가족회사 등은 실제로 많이 사용되므로 그에 특화된 과목을 개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➄는 회사법과 다른 법분야가 교차하는 영역이므로 “회사법”분야에 전속시킬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회사”의 거래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고급회사법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➄는 회사의 행위에 대해서 회사법은 물론이고 재무관리와 자본시장법, 회계와 세법, 나아가 노동법의 관점까지 종합적으로 동원하여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대규모 로펌이라면 회사에 관한 대형 deal의 경우 각 분야마다 전문 변호사가 참여한 팀을 구성하여 외부전문가들과 함께 일을 진행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회사법파트 변호사는 원만한 팀웍을 위해서 다른 분야 법은 물론 회계와 재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출 필요가 있다. ➄와 관련해서 미국에서 요즘 출간되는 문헌을 보면 창업투자에 특화된 것들도 눈에 띈다.

아마도 현실적으로 개설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➄에 대한 강의일 것이다. 20여 년 전 서울대 이창희 교수와 함께 대학원에서 비슷한 강의를 “전략적 기업경영과 법”이란 제목으로 수차 공동 개설한 적이 있다. 이교수가 애써 사례를 만들고 모범답안 같은 것도 준비하여 이른바 사례식 수업을 진행했었다. 수강생들의 반응이 좋아서 교재 비슷한 것도 만들어보려고 시도했으나 각자 교과서 출간 등 자신의 일에 몰리다보니 흐지부지되어버렸다. 일본에서는 江頭憲治郞교수가 중심이 된 연구회가 1981년부터 결성이 되어 책도 여러 권 출간한 바 있지만 최근에는 그런 비슷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그간 우리 법학교육에서 “고급회사법”의 발전이 미흡했던 것은 나를 포함한 학계 구성원들의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인 점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로서 그에 못지않은 장애요소로는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들의 관심부족도 들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의 눈앞의 관심이 변호사시험 합격에 집중되다 보니 시험과 무관한 “고급”과목에 대한 관심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다수 학생들이 외면하는 과목을 교수들이 애써 개발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변호사 시험제도가 법학교육에 미치는 절대적인 영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면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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