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회사 이사의 신인의무

종래 델라웨어주 회사법상 이사의 결정에 적용하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가 존재했다. 하나는 이익충돌거래에 적용되는 전면적 공정성 기준(entire fairness standard)이고 다른 하나는 경영판단원칙이다. 1980년대 M&A거래가 증가하면서 특히 적대적 기업인수에 대한 방어를 도모하는 대상회사 경영진의 행동을 규율하기에는 이 두 가지 기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이른바 중간적 기준(intermediate standard)이란 것이 등장하게 되었다. 대상회사 이사회의 경영권방어행위는 전통적인 자기거래의 경우보다는 약하지만 이익충돌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간적 기준을 적용하는 법원의 심사를 – 경영판단원칙이 적용되는 경우에 비하여 – 고도의 심사(enhanced scrutiny)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M&A와 관련된 이사의 의무는 주로 경영권방어와 관련하여 논의가 되었다. 그러나 이사의 의무는 적대적 기업인수의 경우 뿐 아니라 우호적 기업인수의 경우에도 문제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매각하는 회사의 이사가 일종의 경매를 통해서 가장 높은 가격으로 회사를 매각할 의무라는 이른바 Revlon의무를 지고 있다. 실제로는 우호적 인수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Revlon의무의 구체적인 범위에 관해서는 아직도 논의가 멈추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는 2013년 白井正和교수가 발간한 책(友好的買収の場面における取締役に対する規律)을 비롯해 많은 문헌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논의가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 M&A계약에서의 거래보호조항의 효력과 관련하여 간혹 언급되고 있기는 하지만 M&A와 관련한 이사의 신인의무는 아직 학계가 실무계에서 별로 의식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오늘은 한층 덜 알려진 인수회사 이사의 신인의무에 대한 논문을 한편 소개하기로 한다. Afra Afsharipour, Enhanced Scrutiny on the Buy-Side, 53 Georgia Law Review 443 (2019). 인수회사 이사의 신인의무는 미국에서도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한 주제이다. 저자는 대상회사 이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수회사 이사의 결정도 고도의 심사를 받도록 하는 방안에 대한 찬반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IV). 먼저 찬성론으로는 다음 3가지를 든다. ➀대상회사 이사의 행위 뿐 아니라 인수회사 이사의 행위도 다소 이익충돌의 요소를 포함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고도의 심사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실증적 자료에 의하면 인수회사 이사회의 인수결정은 경영진과 재무고문의 이익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이사회의 판단은 거래의 가치실현 여부가 불확실하고 사회의 관심과 거금이 걸려있는 대규모기업인수의 경우에 더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그런 영향은 결국 인수대가로 과도한 금액을 지급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➁이사회가 관여하는 의사결정의 실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인수회사쪽 결정을 고도의 심사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만약 고도의 심사를 실시하지 않는 경우에는 이사들은 인수결정과정에 충분히 참여하지 않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Van Gorkom판결이나 Revlon판결이 있기 전에는 대상회사 이사들도 매각결정에 별로 관여하지 않았었다. ➂인수결정과 매각결정이 서로 밀접한 관련 하에 행해진다는 회사의 의사결정 현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인수결정을 고도의 심사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사회에서 인수결정은 독자적으로 검토되기 보다는 다른 대안과 아울러 검토되는 것이 보통이고 그 때 대안에는 매각하는 방안도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찬성론에 대해서 저자는 몇 가지 반대론을 제시하고 있다. ➀고도의 심사는 일부 매각결정에 대해서만 적용된다고 보는 자들의 관점에서는 인수결정에까지 그것을 확장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➁인수결정에도 이익충돌적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매각결정의 경우만큼 두드러지지 않는다. 인수결정의 경우에는 매각결정의 경우와 달리 이른바 final period의 문제가 없기 때문에 이익충돌이 시장압력에 의해서 상당부분 통제를 받는다. ➂인수결정은 매각결정에 비하여 그로 인한 변화의 폭이 크지 않다. ➃실제로 고도의 심사로 인하여 매각결정에서의 이익충돌이 잘 통제되었다고 볼 근거가 없는데 인수결정의 경우에는 그것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저자는 실제로 고도의 심사의 결과 매각결정이 신인의무 위반으로 판단된 사례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인수결정에 대한 통제의 필요를 인정하면서도 고도의 심사를 요구하는 경우 매각결정의 경우에서와 같이 변호사보수를 노린 주주소송의 구실만 늘려줄 위험이 있음을 우려한다. 저자는 그 경우 고도의 심사를 피하기 위하여 인수회사는 주주총회 승인을 받는 방안을 택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그 방안의 장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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