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 상법은 주의의무와 별도로 충실의무를 규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기거래와 경업금지 외에 회사기회법리까지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외형상으론 미국 회사법과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익충돌거래규제가 작동하는 실제 모습은 미국과 큰 차이가 있다. 이처럼 대륙법국가에서 도입한 영미법개념이 모국에서와 달리 작동하는 현상은 EU의 다른 대륙법계 국가에서도 비슷한 모양이다. 오늘은 이에 관한 최근 논문을 한편 소개한다. Marco Corradi & Genevieve Helleringer, Self-Dealing, Corporate Opportunities and the Duty of Loyalty – A US, UK and EU Comparative Perspective (2021). 교신저자인 Helleringer교수는 젊은 여성 프랑스 회사법학자로 국제학계에서 활동이 활발한 편이다. 3년 전 관계자거래에 관한 공동연구서 발간을 준비하며 참가자들이 Oxford대학에 모여 비공개 워크샵을 열었을 때 한번 만난 적이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대화를 나눴던 기억은 없다.
저자들은 이익충돌거래를 ➀자기거래를 비롯한 관계자거래와 ➁이사의 회사외부활동을 규율하는 경업금지와 회사기회법리의 두 유형으로 나누어 검토한다. 논문의 구성도 ➀을 다루는 1장과 ➁를 다루는 2장으로 단순하다. 1장에서는 영미법과 EU국가법을 각각 살펴본다. 저자들은 영국과 미국의 법은 물론이고 충실의무(duty of loyalty)와 무관하게 형성된 EU국가에서의 법도 모두 절차적 접근방식에 의존함을 지적한다. EU국가에서 기존의 절차적 요건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는데 저자들은 그 주된 원인을 독립된 제3자의 관여가 충분치 못했다는 점에서 찾는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들은 최근 개정된 주주권지침(Shareholder Rights Directive)의 개요를 소개하고 공시, 독립적인 제3자 등 그 실효성에 영향을 미칠 요소들에 대해서 검토한다.
2장에서는 경업금지와 회사기회법리를 논한다. 경업금지에 대한 규제는 EU국가에서도 전부터 존재했지만 회사기회법리는 비교적 뒤늦게 입법이나 판례를 통해서 도입된 것으로 저자들은 특히 후자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들은 영국의 회사기회법리가 미국에서와는 달리 회사에 손해가 없는 경우에도 금지하는 등 여러 면에서 훨씬 경직적이라고 비판한다. EU국가들에서는 뒤늦게 회사기회법리가 도입되었지만 실제 소송에서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저자들은 그 주된 이유를 영미법에서와는 달리 이익반환 대신 손해배상 밖에 인정되지 않는 구제수단의 한계에서 찾고 있다. 또한 저자들은 관계자거래에 대한 EU의 규제는 어느 정도 완화되었지만 도입의 역사가 짧은 회사기회법리의 경우 EU차원의 통일의 움직임도 없고 규제완화의 움직임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