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치평가방법의 변화와 회사의 목적

서울대 상법교수들은 수 년 전부터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교수들과 정기적으로 학술교류를 갖고 있다. 그간 서울대와 UC Irvine대에서 각각 한 차례씩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는데 지난 해에는 코로나 때문에 ZOOM을 통한 화상회의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매월 한 번씩 만나게 되었으니 오히려 교류는 더 활발해진 셈이다. 나는 가급적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지난 12월 세미나는 다른 모임이 겹치는 바람에 참여할 수 없었다. 오늘은 그 때 발표된 논문을 이 블로그에 소개함으로써 다소나마 미안함을 덜고자 한다. James J. Park, From Managers to Markets: Valuation and the Shareholder Wealth Paradigm(2020) 저자인 박교수는 UCLA 로스쿨 교수로 증권법분야에 조예가 깊은 분이다. 직접 만난 적이 없어 화상으로나마 만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 유감스러웠다.

이 블로그에서도 몇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현재 국제학계에서는 회사가 무엇을 목적으로 해야 하는가(corporate purpose)라는 거창한 문제를 둘러싸고 논의가 한창이다. 현재의 흐름은 주주이익극대화라는 좁은 목표에 집중하는 기존의 통설적 견해 대신 이해관계자이익 내지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강조하는 새로운 견해가 유력해지고 있는 중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통설적인 주주이익지상주의는 1970년 무렵 정착된 것인데 그런 변화는 기업가치평가방법의 발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가치의 평가방법이 다시 변화하면 회사의 목적도 다시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가치평가방법의 변화에 대해서는 III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회사이익(earnings)의 중요성과 주가가 회사의 장래실적을 반영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업가치를 평가할 때 미래의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할인하여 산정하는 모델이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그리하여 미래의 회사이익을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 그와 관련해서는 예측정보를 구할 필요가 있는데 SEC는 1970년대 후반까지도 허황된 정보가 투자자를 현혹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예측정보의 공시를 억제하였다.

미래의 회사이익 예측에 관해서는 IV장에서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IV장은 미래의 회사이익에 대한 정보를 시장에 전달하는 경로로 혼합결합기업집단(conglomerates)와 예상이익(projections)의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전자에 관한 서술은 이해하기 어려운데 다행히 중요한 것은 후자이다. 저자에 따르면 20세기 초 일부 대기업들이 내부적으로 예상이익을 산정하여 그것을 토대로 투자를 결정하는 관행이 생겨났다. 그러나 미래의 현금흐름을 예측하는 관행(budget forecasting)이 공개회사들 사이에 널리 퍼진 것은 2차대전 후의 일이다. 회사내부의 현금흐름예측이 정교해짐에 따라 시장참여자들도 그 정보를 얻고자 하였다. 1960년대에 이르면 애널리스트들이 출현하게 되는데 이들은 투자대상기업의 예상이익을 추정하여 투자자들에게 제공하였다. 애널리스트가 추정한 예상이익은 회사의 예상치를 토대로 한 것인 경우도 있었는데 회사들은 그 정보를 일부 애널리스트들에만 선택적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들은 시장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애널리스트들이 제시한 예상이익을 달성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V장에서는 기업가치평가와 회사의 목적에 대해서 설명한다. 시장에서 회사가치를 미래이익을 토대로 산정하는 관행은 회사경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경영자들은 미래의 예상이익을 달성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주주이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영자와 주주의 이익이 일치하게 되었기 때문에 대리비용이 감소하였다. 그러나 경영자가 단기적인 재무상의 목표에 신경을 쓰다 보니 근로자나 소비자 같은 이해관계자의 이익은 소홀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업의 가치평가가 반드시 단기적인 미래의 예상이익에 얽매이는 것은 아니다. 일부 초우량 혁신기업의 경우에는 당장의 이익이 크지 않아도 높은 가치평가를 받을 수 있으므로 주주 외의 이해관계자 이익을 충분히 고려할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관한 저자의 주장은 앞의 주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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