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를 오래 공부하다보니 언제부터인가 부패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특혜의 대가로 바로 돈을 주고받는 저급한 수준의 부패(이른바 “quid pro quo corruption”)보다 대가의 지급이 현금이 아닌 기회의 제공으로 이루어지고 그것도 즉각적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형태의 – 내 식으로는 soft corruption이라고 부르는 – 부패가 더 흥미를 끌었다. 전자를 대가성 부패라고 부른다면 후자는 관계성 부패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관계성 부패는 대가성 부패보다 없애기 어렵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고 다소간 존재하기 마련이다. 오늘은 미국의 관계성 부패에 관한 짧은 인터뷰 기사를 소개한다. Jana Kasperkevic, Systemic Corruption in America Spans Political Parties, PROMARKET January 19, 2021)
인터뷰의 상대방은 Sarah Chayes란 언론인 출신 작가이다. 인터뷰는 그가 2020년 출간한 “On Corruption in America – And What is at Stake”이란 책을 중심으로 한 것이지만 책 출간 후에 있었던 미국 대선과 바이든의 내각구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는 현대 미국을 진문가 지배라는 의미의 “expertocracy”라는 신조어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기업과 정부를 오가면서 서로 장기간에 걸쳐 밀어주고 끌어주는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엘리트들이 민주당과 공화당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자신들의 전문성을 내세워 일반 시민들을 배제하고 이른바 super-rich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립보다는 super-rich와 일반시민간의 대립을 더 강조한다. 그는 바이든이 BlackRock출신 인사들을 영입하고 월가에서 거액의 기부를 받은 엘렌을 재무장관으로 선임한 것에 대해서도 이익충돌이란 관점에서 비판을 가한다.
이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물론 위 책을 읽어도 좋겠지만 그가 한 인터뷰 동영상을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내가 본 것은 Nancy Maclean이란 역사학교수와 한 인터뷰 동영상이다. 위 PROMARKET 인터뷰에 비해서 이 동영상 인터뷰는 내용이 풍부하고 재미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금융위기 후에 월스트리트 금융대기업 CEO들이 전혀 처벌받지 않은 것을 오바마 정권의 첫 법무장관인 에릭 홀더가 금융기관 고객이 많은 워싱턴 로펌인 Covington & Burling출신이란 것과 연결시키는 부분이었다.
이미 제3세계 국가의 부패에 관한 책을 출판한 적이 있는 그가 미국의 부패에 대해서 책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라디오에서 연방대법원이 버지니아 주지사의 뇌물혐의에 대한 하급심의 (전원일치의) 유죄판결을 전원일치로 파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라고 한다. 그가 설명하는 판결내용도 재미있었지만 그가 라디오를 듣고 있던 상황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는 2016년8월 어느 날 저녁 혼자 맥주를 마시다 뉴스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을 보고 혹시나 해서 검색해보니 역시 그는 40여 년 전 하바드에서 내게 민사소송법을 가르쳤던 Abram Chayes교수의 딸이었다. 당시 Chayes교수는 수강생들을 몇 그룹으로 나눠 점심을 같이 했는데 나도 한번 끼게 되었다. 학교근처 허름한 식당에서 그는 민사소송법이 아닌 다른 법 이야기를 자신만만하게 늘어놓던 기억만 남아있다. 또 한 가지, 그가 점심인데도 마티니를 시켜 마시던 장면이 술이 약한 내게는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딸의 맥주 이야기를 듣고 불현듯 그 장면이 떠오르며 부전여전이란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