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감시의무에 관한 Boeing결정

오늘은 현재 미국에서 주목을 끌고 있는 델라웨어 형평법원의 최근 판례를 소개한다. In re The Boeing Company Derivative Litigation, 2021 WL 4059934 (Del. Ch. Sept. 7, 2021), 당해 판례가 100페이지를 넘을 정도로 길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콜롬비아 블로그에 업로드된 Weil Gotshal로펌의 메모를 기초로 소개한다. 사안은 다음과 같다. 보잉사는 2018년 Boeing 737 MAX가 추락하였음에도 조사에 착수하지 않았으나 2019년 같은 기종의 추락사고가 재발하자 조사를 개시하여 그 기종 항공기에서 소프트웨어 하자를 비롯한 몇 가지 결함을 밝혀냈다. 이에 보잉사 주주들은 이사들에 대해서 감시의무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대표소송을 제기하였다.

감시의무에 관한 리딩케이스인 Caremark판결에 의하면 원고는 소장에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실을 기재할 것이 요구된다: ➀이사들이 어떠한 보고나 정보의 시스템 내지 통제장치도 작동하는 것을 완전히 빼먹었거나(utterly failed) ➁그런 시스템이나 통제장치를 작동하였지만 이사들이 그 운용을 감독하거나 감시하는 것을 알면서도 빠뜨림으로써(consciously failed to monitor or oversee) 자신들의 주목을 요하는 위험이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 이 요건의 엄격성으로 말미암아 감시의무위반은 아마도 주주가 승소하기 가장 어려운 청구원인으로 널리 일컬어졌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결정을 통해서 안전문제(safety issues)에 관한 감시의무의 경우 원고주주가 위의 요건을 충족한다는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 결정도 그런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에 속한다.

통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피고이사들은 위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각하신청을 했지만 델라웨어 형평법원은 두 요건을 모두 충족하였다고 판단하며 그 신청을 기각하였다. 먼저 ➀에 관한 판단을 살펴본다. 법원은 회사여건에 적합한 감시시스템의 선택은 경영판단에 속하지만 합리적인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 성실한 노력(good faith effort)을 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회계사기와 같은 재무상의 위법행위가 아니라 회사의 사업에 치명적인 안전문제의 경우에는 보다 엄격한 수준이 요구된다는 것이 최근 델라웨어 대법원의 태도이다(Marchand v. Barnhill, 212 A.3d 805(Del. 2019). Boeing사건에서 문제된 항공기안전은 회사사업의 사활을 좌우하는(mission-critical) 사항이었다. 이런 사안에서 주주들은 이사들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장부열람권을 행사하는 것이 보통이다. 63만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혔다.

– 다른 항공사의 경우와는 달리 이사회에는 항공기안전을 감시할 책임이 있는 위원회가 없었고 감사위원회는 재무상의 위험에만 초점을 맞추었음

– 그렇다고 해서 전체 이사회가 안전문제를 정식으로 다루지도 않았음

– 이사회는 Boeing 737 MAX의 개발과 관련해서 안전문제에 대한 보고를 받지 못했음

– 이사회에서 안전문제가 거론된 경우에도 경영진의 설명을 소극적으로 수용했을 뿐 더 이상의 정보요구가 없었음

– 보잉사는 내부신고자가 안전문제를 이사회에 통보하는 내부시스템이 없었음

법원은 효과적인 감시시스템이란 그 시스템을 통해서 이사회에 문제점이 보고되지 않는 한 회사임직원이 자신들의 권한을 회사이익을 위해서 행사하고 있다고 이사들이 믿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고 판시하였다.

다음은 ➁에 관해서 살펴본다. 법원은 2018년 사고가 있은 후에는 이사회가 위법행위에 관한 증거를 알았지만 그 문제에 대처할 의무를 알면서도 소홀히 함으로써 불성실하게(in bad faith) 행동했다고 판시하였다. 열람권행사로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언론 등에서 기체결함의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회는 경영진의 반대견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등 안전문제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사회는 2차 사고가 발생하고 FAA가 그 기종 항공기의 운항을 정지한 후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항공기안전문제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주주대표소송을 둘러싼 여건과 장부열람권의 범위가 다른 우리나라에서 이 판례가 갖는 의미는 아무래도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전문제가 회사사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회사일수록 이사회에서 그 문제에 대해서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고 또 그 관심의 흔적을 기록으로 많이 남길 필요가 있다는 점은 우리 기업의 이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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