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문지기로 적합한가?

자본시장에서 문지기(gatekeepers) 역할을 맡는 것은 주로 회계법인, 투자은행, 신용평가회사 등으로 여겨졌다. 미국에서는 SOX법의 위임에 따라 SEC가 중대한 위법을 발견한 변호사에게 상급자에 보고할 의무를 부과함과 아울러 최고법무임원(chief legal officer)의 문지기 역할을 제도화하였다. 오늘은 변호사도 문지기 역할에 적합하다는 취지를 밝힌 논문을 소개한다. Sung Hui Kim, Do Lawyers Make Good Gatekeepers?, in THE CAMBRIDGE HANDBOOK OF INVESTOR PROTECTION (ed. Arthur Laby, Cambridge University Press, forthcoming 2021). 이름에서 보다시피 저자는 한국계학자로 현재 UCLA교수로 있다. (참고로 미국에서 first name으로 이런 한국식 이름만을 고집하는 교포학자는 많지 않다) UCLA에는 한국계교수가 여럿 있는데 회사법과 자본시장법 분야에선 이 분과 James Park교수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Park교수가 보다 전통적인 주제에 관심이 있는데 비하여 Kim교수는 자신의 다양한 실무경험을 토대로 다채로운 주제에 관해서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 논문의 본문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II장에서는 이론적인 관점에서 변호사가 문지기 역할에 적합하다는 점을 밝힌다. III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과연 변호사들이 문지기 역할을 잘 수행하는지 여부를 실증연구를 통해서 살펴본다. 본론에 해당하는 이들 두 장에 이어 IV장에서는 변호사가 이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문지기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간단히 검토한다. 이하에서는 각장별로 몇 가지 눈에 띄는 점을 언급하기로 한다.

II장에서는 변호사에게 문지기 역할을 부과하려는 시도에 대한 변호사업계의 반대논리를 회계감사인과 비교하며 검토한다. 회계감사인 업무는 당초부터 공적인 성격이 있음에 반하여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익만을 고려해야하는 존재라는 근본적인 차이를 강조하는 반대논리에 대해서 저자는 그것이 현대 회사법무서비스의 실태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변호사가 문지기 역할에 적합한 근거로 이른바 범위의 경제(economies of scope)를 든다. 사실을 조사하고 평가하는 변호사의 업무자체가 문지기 역할을 수행하는데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판단이 회사의 외부로펌의 경우에는 물론이고 사내변호사의 경우에도 타당함을 논증한다. 과거 사내변호사에 대해서 자신이 다소 회의적이었지만 특히 general counsel의 경우에는 불법적인 업무집행에 대해서 제동을 걸 수 있는 힘이 있고 정보도 외부로펌보다 많다고 주장한다.

III장에서는 변호사가 과연 주어진 문지기 역할을 실제로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사내변호사와 외부로펌을 나누어 살펴본다. 저자에 따르면 사내변호사에 비하여 외부로펌은 문지기 역할에 훨씬 소극적이어서 대체로 외부자문을 제공하는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저자는 주로 사내변호사의 문지기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다수의 실증연구를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내변호사는 위법성이 분명한 사항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지만 상대적으로 위법여부가 모호한 경우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한다고 한다. 예컨대 내부자거래를 비롯한 위법행위를 방지하고 공시와 관련하여 소송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에는 적극적이지만 세무나 회계처리와 같이 불법성이 덜 두드러진 경우에는 경영자들의 결정을 가로막는 것을 주저한다는 것이다.

IV장에서는 변호사가 이사로서 감사위원회에 참여하는 경우 재무보고의 품질을 높인다는 실증연구를 소개한다. 그 연구는 변호사를 이사로 선임하는 것이 회사의 컴플라이언스 수준을 높이는 측면에서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법률가의 관점에서는 고무적인 대목이라고 하겠지만(cf. “사외이사 중에는 왜 회사법교수가 별로 없나?” 2020.3.8.자 포스트) 저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 부분은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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